그러나, 작가가 표현하고자 한 것은 단지 시간의 흔적이 아니라 ‘흐름’이다. 마침내 그가 도달한 지점은 시간을 통한 만남, 즉 생성과 상생이다. 특히 “토템이나 선사시대 암각화에서 생성의 에너지와 서로가 서로에게 생명력을 부여하는 상생의 힘을 느꼈다”는 작가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시간의 관계’를 한지(韓紙)를 통해 표현하고 있다.
9∼22일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열리는 그의 개인전에는 ‘생성(生成)과 상생(相生)’이라는 주제의 연작 60여점이 전시된다.
‘상생-연가’, ‘상생-춤’, ‘상생-인연’ 등 ‘상생’ 연작은 강한 필선과 은은한 먹, 현란한 옻칠로 표현된 추상의 세계다. 특히 ‘장자’에 나오는 대붕(大鵬)이나 형형한 눈동자, 탈바가지, 태양 등의 상징은 자연의 요소들을 신화에서 차용해 구체화한 것들이다.
미술평론가 김복영씨는 "풍상을 견디며 버티고 서 있는 토벽의 표정같이, 많이 닦이고 씻겨나가 일부만 남았지만 남은 일부가 전부를 증언하고 포효하는 듯한 모습”이라고 전시작들을 평했다.
임씨는 종이를 직접 제작하는 작가로도 유명하다. 닥나무를 재료로 한지를 만들어 수묵그림을 그린 뒤 물 속에 넣고 이 물 먹은 한지를 다시 천연염색법으로 물들인다. 이것이 마르면 들기름을 칠하고 영구보존을 위해 옻칠로 마무리한다. 한지와 수묵이 주는 묵직함과 함께 천연 채색의 강렬한 빛깔과 화려한 옻칠에서는 경쾌함이 느껴진다. 02-734-0458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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