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은 1983년 영국에서 초연된 연극 ‘런 포 유어 와이프’(Run for Your Wife)가 원작. 전 세계 40여 개국의 무대에 올랐고 국내에서도 ‘라이어’라는 제목으로 공연돼 30만 명이 넘는 관객을 기록했다.
순수하고 헌신적인 명순(서영희)과 경제력 있고 섹시한 정애(송선미). 택시 기사 만철(주진모)은 운전으로 몸이 고단해도 새벽 3시 조강지처인 명순 집 ‘찍고’, 다시 오전 7시 결혼 신고를 하지 않은 채 살고 있는 정애를 찾아가는 스케줄을 지키며 두 집 살림을 한다.
영화는 ‘두 개의 사랑=두 배의 행복’이라는 신조로 살아온 만철의 생일날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다뤘다. 만철이 차량사고로 엉겹 결에 현상수배범을 잡으면서 그의 행복한 이중생활은 최대의 위기를 맞는다. 기자(임현식)가 용감한 시민이라며 찾아오고, 형사(손현주)는 만철을 수배범과 연결된 조직원으로 여기고, 여자들은 횡설수설하는 만철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백수’ 친구인 상구(공형진)의 도움으로 위기를 넘긴 것도 잠시. 만철의 입에서는 거짓말을 지키기 위한, 더 큰 거짓말이 계속된다.
영화는 밑그림인 연극과 매우 닮았다. 대부분의 장면은 명순과 정애의 집을 중심으로 촬영됐다. 이 공간에서 만철과 상구의 ‘세치 혀’ 놀림을 중심으로 두 여자, 형사, 기자가 들락거리며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거짓말 게임에 참여한다. 그리고 마침내 6명의 인물은 연극의 라스트 신처럼 한 자리에 모인다.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는 ‘양치기 소년의 뻔한 최후’가 아니다. 연극을 보듯 생생하게 살아 있는 캐릭터, 애드리브의 향연으로 불릴 만한 배우들의 탄력적 대사, 빠른 전개 등에 있다. 이야기가 어디로 흘러갈지 예정됐음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을 계속 웃기는 이유다.
그런 면에서 상업 영화 ‘라이어’의 거짓말은 수준급의 완성도를 갖췄다. 반면 실패한 것은 거짓말 사이에 숨겨 놓은 진실이 충분히 전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만철이 사람들을 속일 수 있었던 것은 능수능란한 혀의 테크닉이 아니라 사람들이 신기루처럼 찾아 헤매는 욕망과 이로 인한 착시(錯視) 현상 때문이다. 두 여자가 갈망한 것은 ‘둘을 똑같이 사랑한다’가 아니라 ‘너만을 사랑한다’는 믿음이었다. 특종을 쫓는 기자는 용감한 시민이 동명이인(同名異人)이라는 기막힌 사연에 흥분했고, 몇 개월간 현상수배범을 추적하다 어이없이 만철에게 ‘새치기’ 당한 형사는 만철이 용감한 시민이 아니라 조직원이라는 확신이 필요했다.
영화는 만철의 고백에도 애써 진실을 외면하려는 등장인물들을 통해 이해관계 또는 말 속에서 왜곡되는 진실의 허약함을 보여준다. 하지만 웃음소리가 너무 커진 탓에 감독의 속내가 객석으로 전이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지난해 데뷔작 ‘동갑내기 과외하기’로 전국 520만 관객을 기록한 김경형 감독의 두 번째 연출작. 23일 개봉. 18세 이상 관람 가.
김갑식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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