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125>卷三. 覇王의 길

  • 입력 2004년 4월 13일 18시 46분


20萬을 산 채 묻고 ⑦

그날 밤 삼경이 되자 경포(경布)와 포(蒲)장군은 가만히 명을 내려 군사들을 모두 군막에서 불러냈다. 그리고 기병(騎兵)과 보갑(步甲)을 앞세운 3만 대군을 일시에 골짜기 안으로 몰아넣으면서 그곳 움막에서 잠들어 있는 진나라 장졸들을 모조리 죽이게 했다.

“움막마다 닥치는 대로 불을 지르고, 움직이는 것은 모두 죽여라. 아무도 이 골짜기를 빠져 나오게 해서는 안 된다!”

경포와 포장군이 몸소 칼을 빼들고 앞장서며 외치자 초나라 군사들이 기다렸다는 듯 그 명을 받들었다. 일부러 골짜기 안에 몰아넣은 항졸들의 움막마다 불을 지르고, 자다가 놀라 뛰쳐나오는 항졸들을 마구 죽였다. 그들 뒤에는 다시 5만의 초군(楚軍)이 골짜기 입구를 막고 있어 항졸들이 앞으로 뚫고 나와 골짜기를 벗어나려 해도 뜻을 이룰 수가 없었다.

형세가 그러하니, 골짜기 초입의 소란에 미리 움막에서 빠져 나온 골짜기 안쪽의 항졸들은 어쩔 수 없이 뒤로 밀렸다. 그러자 보다 안쪽 골짜기의 움막들도 모두 깨어나 영문도 모르면서 뒤로 몰렸다. 곧 골짜기 입구 쪽의 맹렬한 불길과 처절한 비명소리에 쫓긴 10만이 넘는 사람들이 거대한 물결을 이루듯 골짜기 안쪽으로, 안쪽으로 밀려갔다.

마침내 모든 항졸들이 다 잠에서 깨어나 움막을 뛰쳐나오고, 그 선두는 골짜기 끄트머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이르렀다. 그제야 그 골짜기가 수십 길 진흙벼랑으로 끝나 있음을 상기한 항졸들 가운데 몇몇이 소리 높이 외쳤다.

“멈추어라! 이 골짜기 끝은 수십 길 낭떠러지다. 초나라 놈들은 우리를 그리로 몰아넣어 저희 창칼에 피 묻히지 않고 우리를 모조리 죽이려는 수작이다. 돌아서라. 어차피 죽을 바에야 돌아서서 싸우자. 맨손이라도 돌아서 싸우다 한 놈이라도 쳐 죽이고 죽자!”

하지만 그때는 모든 게 이미 늦은 뒤였다. 그들의 목소리는 더 많이 겁먹고 놀란 외침에 속절없이 묻혀 버렸다. 그리고 죽음의 덫에 걸려 반나마 넋이 나간 20만의 항졸은 막을 길 없는 거센 물결처럼 골짜기를 휩쓸며 모든 것을 앞으로만 밀어냈다.

이윽고 골짜기 끝으로 몰리던 항졸들의 선두가 비명과 함께 골짜기 끝의 낭떠러지로 떨어졌다. 그 수백 명 대부분이 떨어지는 대로 머리가 깨지고 창자가 터져 바로 죽었다. 그러나 다음 줄, 다음 줄 차례로 떨어지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두텁게 쌓인 사람의 시체 위에 떨어지니 쉬 목숨이 끊어지지 않았다. 그들 위에 다시 다른 사람들이 떨어져 눌려 죽거나 숨이 막혀 죽어갔다.

나중에는 골짜기 끝의 사정이 골짜기 중간에서 몰리고 있는 항졸들에게도 알려졌다. 막다른 골목에서는 쥐도 고양이를 문다는 말대로 이를 악문 항졸들이 맨손으로 초나라 군사들에게 맞서보았으나 될 일이 아니었다. 온몸을 갑주로 두른 초나라 기병이나 보갑(步甲)들이 휘두르는 날카로운 창칼에 사냥 당하는 짐승처럼 죽어갔다.

“제발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무엇이든지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제발 목숨만….”

항졸들 중에는 아예 땅바닥에 엎드려 그렇게 애처로운 목소리로 빌어보기도 했지만 살 수 없기는 맞서는 패거리나 다름없었다. 피 맛을 보고 눈이 뒤집힌 초나라 군사들은 군령을 핑계로 마음껏 그런 항졸들을 찌르고 베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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