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문 현수막에 ‘과학의 달’을 기념하는 구호 하나씩을 내거는 4월은 학교 도서실에 과학 독후감을 ‘써야 하는’ 아이들이 찾아오는 때이기도 하다. 과학 지식을 설명하는 책들과 함께 간간이 과학자의 이야기, 공상과학(SF) 관련 서적을 빌려가는 학생들이 있다.
한 아이가 “혹시 이런 책도 과학 독후감거리가 되느냐”고 묻는 목록에 시턴의 전기가 있었다. 나는 과학을 어렵게 생각하는 그 아이에게 쥘 베른의 ‘해저 2만리’나, 다윈의 일생을 다룬 전기도 충분히 과학책이 될 수 있다고 얘기했다. 소개하는 ‘파브르 평전’은 그 아이 덕에 나 혼자 과학의 달을 기념하며 읽은 책이다.
이 책은 파브르 만년의 친구였던 르그로와 들랑주의 전기, 그리고 ‘파브르 곤충기’로 알려진 그의 저술을 바탕으로 쓴 평전이다. 한낮의 태양을 받으며 관찰에 몰두하고 있는 장면에서 시작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곤충이 살고 있는 지구, 그리고 그곳에서 파브르가 살았던 역사적 시간을 언급하며 시작한 글은 감동적인 인간 파브르를 우리 곁에 되살려 놓았다. 어린 시절 파브르 곤충기를 읽고는 쇠똥구리나 나나니벌의 솜씨가 그저 놀라웠는데 다시 읽어보니 거기 사물의 비밀을 순진한 눈으로 탐구했던 인간 파브르가 있었다.
책의 부제 ‘나는 살아있는 것을 연구한다’에 담긴 메시지 그대로 파브르의 실험곤충학은, 예쁜 곤충들을 코르크 판지로 도배한 상자에 매끈하게 배열해 종을 정하고 분류하는 것만을 곤충학으로 알았던 당대 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파브르는 20세기의 동물행동학자인 콘라트 로렌츠보다 훨씬 앞서서 곤충의 본능적 충동이라는 ‘행동’에 주목하기도 했다.
그러나 학문적인 성과를 앞세우기 전에, 파브르는 일용할 양식을 얻기 위해 배움의 기쁨이나 세계를 해명하는 일을 멀리해야 했던 당시에 정신적 삶의 소중함을 몸소 실천한 교사였다. 배우는 기쁨을 전하기 위해 참여했던 시민 강좌, 교과서 집필 작업에서 그가 되뇌었다던 ‘이해하지 못하는 가르침은 사람을 튕겨 나가게 만듭니다’라는 문장, 그리고 충분히 엄숙하지 못해서 비난을 받았다는 그의 관찰 기록은 지금 우리의 공부와 글쓰기, 삶의 태도에 대해서도 가르침을 준다.
그가 남긴 말 중에 기억하고 싶은 게 많다. “나는 꿈에 잠길 때마다 단 몇 분이라도 우리 집 개의 뇌로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랐다. 모기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라기도 했다. 세상의 사물들이 얼마나 다르게 보일 것인가!”도 그중 하나다.
유년기에 과학 동화로 파브르와 시턴을 만났던 청소년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저자가 달아놓은 소제목들의 의미를 상상하며 책을 읽다가 파브르의 식을 줄 모르는 열정과 끈기를 배워도 좋고, 이 책을 징검다리 삼아 곤충의 세상과 만나도 좋겠다.
서 미 선 서울 구룡중 교사·
책으로 따뜻한 세상 만드는 교사모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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