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대를 지나 띄엄띄엄 인가가 보이는 정림리로 들어서니 2개 동의 군인 아파트 앞에 불쑥 현대식 건물이 나타났다. 2002년 10월 박수근 화백(1914∼1965년) 생가 터에 들어선 박수근미술관이다. 산자락을 그대로 이어 성벽처럼 작은 돌을 차근차근 쌓아올린 진입로 벽이 특이했다. 박수근 캔버스 특유의 거친 질감을 돌 벽으로 재현했다고 동행한 이 미술관 유홍준 명예관장이 소개했다.
미술관 안으로 들어서니, 분위기가 부산하다. 이날(15일)은 마침, 경기도 포천 공원묘지에 안장돼 있던 박 화백의 묘를 이장(移葬)하는 날. 박 화백은 양구에서 태어나 스물한 살에 고향을 떠난 뒤 타지에서 쉰 한 살에 숨을 거뒀으니 70년 만에 고향 땅으로 돌아와 영면하는 셈이다. 생전에 금슬 좋기로 유명했던 아내 김복순씨의 묘도 함께 이장됐다. 미술관 뒷동산으로 옮겨진 부부의 묘를 보니 명실상부하게 박수근의 혼과 그림이 하나 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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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행사에는 유족인 장녀 인숙씨(60·인천여중 교장)와 장남 성남씨(57·호주 거주)를 비롯해 임경순 양구군수, 박수근미술관 건립에 산파 역할을 했던 강원도 출신의 한지(韓紙)작가 함섭, 서양화가 김한국씨 등 80여명이 참석했다.
모두의 얼굴에서 할 일을 마쳤다는 뿌듯함과 개운함이 묻어났지만 이들 중 갤러리 현대 박명자 대표의 감회가 남달라 보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화랑인 반도화랑에서 일하던 시절부터 박 화백이 숨질 때까지 교분을 유지했던 그녀는 이번 이장을 기념해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박수근의 대표 유화작품을 비롯해 동시대 쟁쟁한 화가들의 주옥같은 작품을 55점이나 기증했다.
박 대표는 “1961년 처음 인연을 맺은 박 화백은 기량도 뛰어났지만 어린아이처럼 천진하고 인정이 많아 내가 지금까지 만난 화가들 중 가장 존경하는 분”이라며 “2년 전 문을 연 미술관이 임 군수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의 헌신적 노력으로 지역미술관의 모범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데 한 몫 보태고 싶었다”고 말했다.
박 대표의 기증작들은 묘 이전을 기리기 위해 24∼8월31일 열리는 ‘박수근과 그 시대 화가들’이란 제목의 전시에서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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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측은 이 전시를 위해 디스플레이를 마치고 막바지 준비작업에 한창이었다. 유족들이 박 대표가 기증한 유화 ‘굴비(1962년)’ 앞에 나란히 섰다. 굴비 두 마리를 그린 이 작품은 가로 29cm×세로 15.5cm(3호 크기)의 작은 정물화지만 소박한 구도, 단순 명쾌한 사실적 묘사, 중후한 색상 표현 등으로 박수근의 서민적 회화감을 잘 드러낸 명작이다.
“어릴 때 아버지가 이걸 그리던 모습이 생생해요. 어머니가 ‘식당에 걸어 놓으면 사람들이 진짜 굴비인 줄 알겠다’고 농담을 해 식구들이 깔깔거리며 웃었지요.” (큰 딸 인숙씨)
“70년대 유작 전을 할 때 구입해 소장해 왔어요. 이제 많은 사람들이 함께 박 화백을 추억할 수 있게 돼 기쁩니다.” (박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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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기증작들은 ‘굴비’를 포함해 1950년대의 드로잉인 ‘독장수’ ‘시장’ 등 박수근의 작품 3점과 동시대에 활약했던 구본웅 김기창 김상유 김환기 김흥수 도상봉 문신 박래현 서세옥 이응노 이중섭 장욱진 등 36명의 작품 52점이다. 유화, 한국화, 수채화, 드로잉 등으로 장르도 다양하며 시대도 1950∼80년대에 고루 걸쳐 있다.
이번 기증으로 박수근미술관은 ‘빈 수레’(컬렉터 조재진씨 기증)와 ‘앉아있는 두 남자’(미술관 구입)를 포함해 박수근 유화 3점을 소장하게 됐다. 이밖에 미술관에는 고인이 생전에 쓰던 수채화 ‘화구(畵具)’를 비롯해 판화 13점, 목판원판 7점, 스케치 70점, 111컷이 담겨 있는 삽화 첩 1권, 크레파스화 1점 등도 소장돼 있다. 033-480-2655
양구=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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