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를 이긴 사람들]장애극복상 받는 보건소장 김세현씨

  • 입력 2004년 4월 18일 18시 47분


장애인으로는 국내 최초로 보건소장이 된 김세현 광주 북구보건소장. 김 소장은 훨씬 더 힘든 상황을 이겨낸 장애인들이 많은데 상을 받게 돼 민망하다고 말했다.   -광주=정승호기자
장애인으로는 국내 최초로 보건소장이 된 김세현 광주 북구보건소장. 김 소장은 훨씬 더 힘든 상황을 이겨낸 장애인들이 많은데 상을 받게 돼 민망하다고 말했다. -광주=정승호기자
“신체장애가 능력의 장애는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우리나라 인구의 10%선(400여만명)인 장애인들. 그러나 비장애인들의 의식 속에 장애인들은 아직도 ‘우리’가 아닌 ‘그들’일 뿐이다. 우리 주변을 조금만 둘러보면 불굴의 노력으로 사회적 편견을 극복하고 적극적인 삶을 살고 있는 장애인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장애인과 그 가족들의 당당하고 아름다운 삶을 소개한다. 그들의 이야기는 ‘장애인을 위한 작은 배려’를 촉구하는 메시지뿐 아니라 비장애인이 장애인으로부터 배워야 할 것들도 담고 있다.》

장애인의 날인 20일 ‘올해의 장애극복상’을 받는 김세현(金世現·53) 광주 북구보건소장은 뇌성마비3급 장애인이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병을 앓은 탓에 그의 몸은 온전치 못하다. 말이 어눌하고 몸동작과 손놀림이 자유스럽지 못하지만 그는 2년째 46만 북구 주민들의 보건위생을 책임지고 있다.

그가 지난해 3월 장애인으로는 국내 최초로 보건소장에 임명되자 주위 반응은 엇갈렸다. 성격이 호탕하고 부지런해 잘 하리라는 기대도 있었지만 행정을 챙기기가 벅찰 것이라는 우려도 만만치 않았다. 1년이 지난 지금 김 소장은 60명의 직원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고 보건소 현안을 매끄럽게 처리하는 등 소장으로서 ‘능력’을 인정받았다.

의무4급 서기관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김 소장의 인생역정은 시련과 고난의 연속이었다. 전남 목포에서 태어난 그는 광주일고를 거쳐 1971년 전남대 의대에 진학했으나 성치 않은 몸 때문에 휴학과 복학을 거듭하느라 80년에야 졸업장을 받았다.

의사가 귀하던 시절이었지만 졸업 후에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차별뿐이었다. “인턴 과정을 밟기 위해 종합병원에 지원했더니 5명 모집에 5명이 지원했는데 저만 탈락했습니다. 몸이 불편한 것은 견딜 수 있지만 주위의 편견은 극복하기 힘들더군요.”

그렇게 1년여 방황하던 그는 은사의 권유로 81년 광주 동구보건소에서 의사 생활을 시작했고 82년에는 북구보건소로 자리를 옮겼다. 이때 만난 한 할머니의 ‘아픔’이 그로 하여금 의술에 더욱 정진하게 했다.

김 소장은 당시 보건소를 찾은 할머니를 치료하기에 역부족이어서 선배의 병원을 소개해줬는데 할머니가 그 병원에서 푸대접을 받고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울먹이는 것을 보고 공부를 더 해야겠다고 다짐했다는 것.

전문의 자격증이 없던 김 소장은 그때부터 1주일에 사흘은 오전에 보건소 진료를 끝내고 오후에 전남대 병원을 찾아 때늦은 수련의 생활을 했다. 모르는 분야가 있으면 후배 의사들을 쫓아다니며 배웠다.

87년 가정의학과 전문의 자격을 획득한 그는 “그동안 ‘희망과 용기’라는 글귀를 가슴 깊이 새기며 살아왔다”면서 “두 단어가 나의 삶을 지탱해 주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많은 장애인들이 받는 것에만 익숙해져 있는 것 같아요. 장애인도 베풀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82년 결혼해 의대생과 고3년생인 두 아들을 두고 있는 김 소장은 정년퇴임을 하면 동네에서 의원을 운영하며 고교 시절 꿈이던 소설을 쓰고 싶다며 밝게 웃었다.

광주=정승호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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