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우
늙은네들만 모여 앉은 오후 세 시의 탑골공원
공중변소에 들어서다 클클, 연지를
새악시처럼 바르고 있는 할마시 둘
조각난 거울에 얼굴을 서로 들이밀며
클클, 머리를 매만져주며
그 영감탱이 꼬리를 치잖여-징그러바서,
높은 음표로 경쾌하게
날아가는 징·그·러·바·서,
거죽이 해진 분첩을 열여
코티분을 꼭꼭 찍어바른다
봄날 오후 세시 탑골공원이
꽃잎을 찍어놓은 젖유리창에 어룽어룽,
젊은 나도 백여시처럼 클클 웃는다
엉덩이를 까고 앉아
문밖에서 도란거리는 소리 오래도록 듣는다
바람난 어여쁜, 엄마가 보고 싶다
-시집 ‘내 혀가 입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창작과 비평사)중에서
‘징그러바서’라며, 조각난 거울에 머리 부딪치며 분칠은 왜 고친다냐. 이 봄날 꼬리치는 영감탱이 하나 없다면? 그보다 울 너머 노인네들 춘정을 혼자 듣고 혼자 웃으면 그만일 걸 굳이 시로 써서 동네방네 풍기는 심보는 무엇? 게다가 ‘바람난 어여쁜, 엄마’가 보고 싶다니. 김선우 시인, 내 조선 유림(儒林)들께 이를 테다.
이를 테다, 하면서도 여태 못 이른 것은 때로 이 시를 들춰보며 클클클 웃는 재미가 각별하기 때문이다. ‘봄날 오후’가 참으로 여실하다. 늙은 벚나무라 꽃피지 않는 봄날 있던가? 모든 봄나무는 죽기 전까지 꽃핀다. 잠자코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하는 혀’가 발칙하지만 늙은이를 꽃나무로 본 저 백여시가 어여쁘다. 꽃뿐이랴, 봄날 오후엔 바위도 불끈하다 절벽을 구르는 걸 본 적 있다.
반칠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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