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에서 나와 굽이굽이 언덕길을 올랐다. 차로 몇 분을 갔을까, 멀리서 나무를 다듬는 전동 톱 소리, 대패 소리가 들려온다. 산 중턱에 너와 지붕을 한 집이 보였다. 일반인들이 모여 집짓기를 배우고 있다는 한옥학교다.》
○ 초보 목수들의 땀방울
산은 집을 품고 집은 사람을 품는다. 변숙현 교장(44)은 자신이 지은 학교 건물을 닮았다. 개량 한복에 수수한 웃음이 일부러 멋 부리지 않은 집의 겉모습과 잘 어울린다. 건축학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현장에서 일하다 한옥의 아름다움에 빠져 지난해 한옥학교를 열었다.
마당에서 스무 명 남짓한 학생들이 나무를 다듬는 작업을 하고 있다. 아직 초보티를 벗지 못한 목수들이다. 이미 봄은 무르익어 차양 넓은 모자도 내리쬐는 햇살을 막기엔 버거워 보였다. 다들 얼굴은 새카맣게 그을었고 몸은 땀에 흥건히 젖었다.
이곳 한옥학교의 집짓기 과정은 3개월.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1기생이 머물렀고 3월부터 이번 기수인 2기 학생들이 와 있다. 모두 23명. 나이는 30대에서 50대까지로, 집을 지어본 경험이라곤 전혀 없다.
직업 목수가 되기 위해 이곳을 찾은 사람도 있고 “한옥을 내 손으로 짓고 살아보는 게 오랜 꿈”인 사람들도 있다. 한달 강습료는 70만원. 먹고 자는 것을 해결하자면 100만원으로 모자란다.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 하고 밥벌이를 접어야 한다. 입학 자체가 쉽지 않은 결정이다.
학생들 틈에 끼여 일을 하던 작은 체구의 노인이 인사를 한다. 가지런히 합장을 하는 손의 마디가 투박하고 무척이나 굵다. 50년 넘게 목수 생활을 해온 김창희 대목(73)이다. 학생들의 사부다.
학생들의 사연은 저마다 제각각. 푸른 작업복을 입은 윤주현씨(38)는 전자업체에서 설계 작업을 하던 샐러리맨이었다. 미혼인 그는 순전히 “몸에 땀이 나는 순수한 노동이 그리워서” 직장을 그만뒀다. 농사를 지을까, 집짓기를 배울까 고민하다 집을 택했다. 사표를 던진 후 6개월간 직업목공학교를 다녔고 다시 한옥을 배우러 이곳에 왔다. 그는 “편하고 안락한 삶이 전부는 아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 그들의 하루 일과
한옥학교의 수업은 매일 아침 8시 반 참선으로 시작한다. 변 교장은 “이곳에 오기 전까지 힘든 일을 안 해본 사람이 많기 때문에 마음을 다스리는 게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톱이나 대패는 나무를 깎는 데 꼭 필요한 도구지만 서툰 목수에겐 위험할 수도 있다. 전동 공구는 더욱 그렇다.
오전 9시에서 10시 사이엔 이론 강의가 있고 그 다음엔 저녁까지 실습이 이어진다. 이론 강의는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한 변 교장이 맡고 있다. 실습은 김 대목의 몫이다.
학생들은 매기마다 작품을 하나씩 만들어낸다. 1기에 입학했던 5명은 3개월 동안 사모정(네 모서리를 가진 정자)을 지었다. 이번 2기생들은 네 개의 면을 가진 우진각 지붕의 살림집을 짓는 참이다.
학교 마당엔 지름이 30cm는 되어 보이는 굵은 통나무가 몇 개 가지런히 놓여 있다. 목재를 다듬기 위한 작업대다. 그 통나무 위로 집에 쓸 기둥과 보를 올려놓았다. 기둥과 보는 사각으로 이미 모양이 잡혀 있었다. 기둥을 주춧돌 위에 세우고 그 위에 보와 도리를 얹으면 집의 기본적인 얼개가 완성된다. 집을 정면에서 볼 때 기둥을 가로로 연결하는 게 도리이고 세로로 연결하는 게 보다.
○ 망치와 끌로 마무리
작업장에선 보와 도리를 얹는 곳을 만들기 위해 기둥의 꼭대기를 열십자 모양으로 우묵하게 파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전동 톱으로 대강 파낸 다음 마무리는 망치와 끌이 맡는다. 기계를 쓰면 속도가 빨라져 효율성이 높아진다. 하지만 세밀한 마무리는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학생들의 서툰 대패질, 망치질이 평생 목수인 김 대목의 눈에 찰 리가 없다. 시범을 보이는 그의 망치질은 망설이거나 주저함이 없고 정확하다.
오후 늦게 서까래를 깎는 작업장에서 김 대목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학생들이 서까래를 잘못 깎아 놓은 걸 발견한 것이다. 김 대목은 “이러고 집을 짓겠다는 건가. 다시 붙여 놓으라”고 호통을 친다. 그의 손놀림은 눈대중 손대중으로 하는 것 같아도 극도로 정밀하다. 나중에 맞춰보면 아귀가 꼭 들어맞는다. 이런 고집이 장인정신이고 관록이다.
○ 왜 집을 배우는가
청도 남산 자락에 해가 뉘엿뉘엿 진다. 고단했던 하루 일과가 저물고 있다.
다들 이력은 다르지만 초보 목수들은 공통점이 있었다. 우리 집 한옥에 대한 그리움 같은 것이다. 찍어낸 사각형의 아파트 공간에서 사는 삶이 썩 만족스러운 것만은 아닌 듯 했다.
경남 마산에서 온 김동준씨(46)는 “교외에 번듯한 한옥을 하나 지어보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목수 일을 배운 지 한 달 반 김씨는 이제 집이 조금 보이기 시작했다고 했다. 길을 가다보면 흉내만 낸 전통 가옥들이 수두룩하다는 것이다. 콘크리트로 짓고 겉에만 흙을 칠한 주택들은 참 우리 집이 아니다.
3개월은 집짓기를 제대로 배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기간이다. 하지만 집을 바라보는 눈이 바뀌고 생각이 바뀐다. 땀을 흘려가며 몸으로 무엇을 해낸다는 보람, 여럿이 힘을 합쳐 하루하루 집을 만들어가는 즐거움이 있다.
변 교장은 청도가 새마을운동의 발상지라고 소개했다. 새마을 운동은 농촌을 근대적인 모습으로 바꿔놓았지만 이 땅에서 우리 전통 가옥을 몰아내는 데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 새마을운동의 발상지에 한옥학교가 있다. 학교에서 내려다본 읍내 곳곳에는 이미 아파트가 여럿 들어섰고 한창 건설 중인 곳도 있었다.
하루를 함께 보내고 나서도 기자는 투정 같은 의문이 들었다. 도대체 스스로 집짓는 게 무엇이 중요한가. 몇 개월 나무를 깎아 본다고 혼자서 집을 지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그저 돈을 주고 사람을 사서 맡겨 버리면 되는 것 아닌가.
이런 물음에 대해 노(老) 목수의 대답은 단순했다. “자기 집인데 주인이 알아야 집을 짓지.”
청도=홍석민기자 smhong@donga.com
사진=이종승기자 urisesang@od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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