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65세 황경화씨 국토종단…“아직도 꿈 많은 소녀지요”

  • 입력 2004년 4월 22일 16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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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22일 전남 해남군에서 국토종단여행을 시작하면서 배웅 나온 아들 내외에게 손을 흔드는 황경화씨. 이달 13일 강원 고성군 통일전망대에 도착했을 때 그의 얼굴은 새까맣게 그을리고 신발은 너덜너덜 해졌다. 사진제공 황경화씨
지난 달 22일 전남 해남군에서 국토종단여행을 시작하면서 배웅 나온 아들 내외에게 손을 흔드는 황경화씨. 이달 13일 강원 고성군 통일전망대에 도착했을 때 그의 얼굴은 새까맣게 그을리고 신발은 너덜너덜 해졌다. 사진제공 황경화씨
《봄바람에 흙먼지가 풀풀 일던 강원 양양군 백두대간 구룡령의 길목. 무거운 다리를 끌고 터벅터벅 걸어 올라가는 그의 앞에 작은 점 하나가 보인다. 점점 확대되어 보이는 얼굴. 남편이다.

혼자 여행한다고 하면 걱정할까봐 단체 여행이라고 ‘거짓말’을 했는데 남편의 얼굴을 보자 반가움 반 걱정 반의 심정이 된다. 새까맣게 그을리고 초췌해진 할머니가 아내인 줄도 모르고 서있던 남편은 그를 알아보자마자 달려와 끌어안고는 “내가 당신에게 뭐 잘못한 게 있었느냐”며 펑펑 눈물을 쏟아낸다.

자그마한 체구에 칠순을 바라보는 황경화씨(65·인천 부평구). 그는 남편 신정진씨(69)가 대성통곡을 할 만한 ‘큰 일’을 해냈다. 지난 달 22일부터 이달 13일까지 그는 땅끝마을 전남 해남군에서 강원 고성군 통일전망대까지 국토를 종단하는 도보여행을 혼자서 마쳤다.

23일 동안 그가 걸은 거리는 2000리, 대략 800km다. 하루에 평균 35km씩을 걸어 국토를 대각선 방향으로 가로지르는 동안 주로 산길을 택해 월출산 월악산 천만산 오대산을 넘었다. 안온한 일상을 뒤로 하고 그가 길 위에서 홀로 맞서려고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 길 위에 홀로 서다

자리에 앉자마자 불쑥 ‘왜 그랬느냐’고 물으니 그는 “남녘의 보리밭, 마늘밭도 보고 싶고…, 먼지 이는 길을 혼자 무한정 걸어보고 싶었다”며 소녀처럼 웃는다.

“칠순이 내일 모레인데 동물도 죽을 때가 되면 귀소본능이 있듯 고향(개성)의 시골길 생각도 나고…. 그 날이 그날인 생활에서 일탈해보고 싶었어요. 몇 년 전부터 꿈꿔왔는데 올봄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생각했지.”

여행 도중 그는 큰아들 부부의 인터넷 홈페이지(kr.blog.yahoo.com/rainstorm4953)에 ‘모든 여자의 꿈은 혼자 여행하는 것’이라는 글을 올렸다.

“…아이들이 커서 모두 어른이 된 날, 비로소 그물에서 해방된다.… 누구의 관심도 끌 수 없는 여자가 되어버린 나이에야 겨우 해방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제부터야말로 여자는 자기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다. …여자는 새롭고 낯선 공기를 몸으로 느끼면서 주위를 살핀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자기가 존재하고 싶은 자리에 자기 자신을 놓아두는 것이다. 무엇이 나를 얽매고 있는 것인가….”

그렇게 그는 길 위에 자신을 부려놓았다.

○ 마음 내려놓기

40년간 해 온 초등학교 교사 생활을 6년 전 접은 뒤 인천 산악회에 가입해 열성적으로 등산을 다닌 그는 2002년 11월 혼자 지리산을 종주했을 정도로 강단 있는 할머니다. 당시 폭설이 내려 로터리 산장에서 아이젠을 착용하지 않은 등산객의 등반을 막자 그는 중산리로 내려가 아이젠을 사서 신발에 묶고 산에 다시 올라 3박4일간 기어이 종주를 마쳤다. 산악회원들 사이에서 그의 별명은 ‘빨치산’.

이번 종단 여행 때는 오전 7시부터 오후 5시까지 걸었다. 발에 물집이 잡혀 발바닥이 “꼭 물이 담긴 비닐주머니”처럼 되어버렸다. 아픈 발로 걸을 때마다 “인어공주가 다리를 얻은 뒤 발걸음마다 아팠다더니 이만큼 아팠을까”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물이 빠지도록 바늘에 실을 꿰어 물집에 끼워둔 채 자고, 생리대를 사서 신발 바닥에 까는 등 응급 처방을 해가며 그 발로 그는 10kg의 배낭을 짊어지고 하루도 쉬지 않고 걸었다.

해가 서산 하늘에 걸리고 지친 몸으로 “오늘 밤엔 어디서 자나”를 생각할 때면 외로움에 온 몸이 저렸다. 그는 “내가 머물러있던 자리, 내 가정이 얼마나 소중한 지를 떠난 뒤에야 절감했다”고 한다.

온종일 사람 하나 만나지 못하고 산 고개를 넘을 때면 마음에 맺힌 과거의 기억들이 무의식의 빗장을 풀고 쏟아져 나왔다. 지난 시절의 고생은 잊을 수 있지만 인간적 모멸감을 주었던 사람들은 잊혀지질 않았다. 월출산을 넘을 때 그런 자신의 마음과 싸우며 그는 하염없이 울었다. 그러면서 그는 “맺힌 마음을 많이 내려놓을 수 있게 됐다”고 한다. “여행이 끝난 뒤 체중이 4kg이 줄었지만 그 보다는 마음의 다이어트가 참 감사하다”고 생각한다.

○ 아름다운 사람들

무서운 세상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는데 고마운 사람들을 만난 것도 이번 여행의 소득이다.

광주의 찜질방에서 만난 40대 후반의 주부는 그를 집으로 초대해 하룻밤 묵게 하고 빨래를 해주며 그를 응원했다. 영월로 가던 길목에서 만난 42세 주부는 그를 격려하기 위해 20리 길을 함께 걸어주겠다고 자청하고 나섰다.

출발할 때 작은 아들이 만들어준 ‘국토종단여행’ 표지를 배낭 속에 넣어두었다가 경상북도에 들어선 뒤에야 배낭에 붙이고 다녔다. “지나가는 차들마다 모두들 태워준다고 서는 바람에 일일이 거절하기도 곤란해서”였다. 그래도 운전자들은 그냥 지나치지 않고 차창을 내려 그에게 꼬박꼬박 응원의 말을 건네곤 했다.

40일 예정이던 종주를 17일이나 일찍 끝냈지만 그는 자신이 끝까지 해내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다만 해보지 않고서는 모른다는 생각이었고 하루도 쉬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옛말은 “미치지 않으면(不狂) 미치지 못한다(不及)”는 말이다. “무엇엔가 미친 사람들이 늘 좋았고 그렇게 살기에 나도 아직 늙지 않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길을 재촉하느라 정약용 생가도 그냥 지나쳐야 했다”며 아쉬워하던 그에게 남편은 다음 달 초 생일선물로 종주 코스를 다시 차로 돌면서 그가 가보고 싶었던 모든 곳을 다 보여주기로 약속했다.

지금 그 길을 다시 걸을 수 있겠느냐고 물으니 그가 눈을 가늘게 뜨고 먼 곳을 바라보며 대답한다.

“글쎄…. 그렇다고 말하기 어려워요. 나도 너무 힘들어서…. 그런데 나는 왜 이 나이에도 가슴 속에서 뭔가 들끓고 있는 건지 몰라. (웃음) 아마 곧 배낭을 메고 다른 길에 나서겠지요.”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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