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피카소’…‘화가’ 피카소와 ‘자유인’ 피카소

  • 입력 2004년 4월 23일 17시 33분


피카소의 1903년 작 ‘인생’. 청색을 주조로 내면세계를 표현했던 청년기 피카소의 이른바 ‘청색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젊음, 결혼, 출산에 이르는 삶의 과정이 슬픔과 고통의 연장선 상에 있음을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사진제공 이룸

피카소의 1903년 작 ‘인생’. 청색을 주조로 내면세계를 표현했던 청년기 피카소의 이른바 ‘청색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젊음, 결혼, 출산에 이르는 삶의 과정이 슬픔과 고통의 연장선 상에 있음을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사진제공 이룸

◇피카소/김원일 지음 /580쪽 5만7000원 이룸

2002년 파블로 피카소의 평전 ‘발견자 피카소’(동방미디어)를 냈던 소설가 김원일씨가 2년 만에 개정 증보판을 냈다. 장정도 하드커버로 바뀌고 원고량은 1100여장에서 2600여장으로, 170여점이던 도판도 300점으로 늘었다. ‘발견자 피카소’가 피카소의 30대 중반까지를 담았다면 이 책은 그의 92세 전 생애에 걸친 것이다.

책은 거의 다시 썼다 싶을 만큼 밀도가 높아졌다. 미학이론에 충실하면서도 소설적인 재미를 가미한 기왕의 맛깔스러움에 미술사조와 용어에 대한 꼼꼼한 설명, 작가의 사적이고 성찰적인 시선까지 담겨 있어 읽는 재미가 배가됐다.

저자는 청년시절 화가를 꿈꾸었으며 지금도 가끔 그림을 그릴 정도로 미술 애호가다. 하지만 피카소에 대한 관심은 단지 미술적 관심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글 쓰는 괴로움’을 오래 겪어 온 소설가는 ‘남의 좋은 글이나 읽으며 나머지 생을 살고 싶다’는 피로에 젖을 즈음, 비록 시공간은 다를지라도 죽을 때까지 치열한 예술혼을 불태운 한 화가의 삶을 통해 생의 에너지를 얻었다는 것이다.

죽을 때까지 자신의 세계를 세우고 깨부수었던 변신과 실험, 그 끊임없는 착상의 원천은 과연 어디에 기인하는가, 그 소용돌이친 내면은 무엇이었나…. 저자는 이 같은 화두를 붙잡아 죽은 피카소를 통해 살아있는 자신의 영혼을 벼리고 싶었던 것이다.

“타고난 건강과 그리기에만 매달린 성실성, 너무 솔직해서 오히려 인간적이었던 진정한 자유인, 들불처럼 타올랐던 무한대의 상상력을 통해 새로움을 발견해나가 확장시킨 자기 세계…. 이러한 천부적 자질 외에도 자기 위에 누구도 세울 수 없다는 질투심과 이기주의, 전통과 기존 질서에 대한 도전과 반역, 남성성의 한 전범으로서의 여성편력 등 인간적 면모까지도 그는 모두 자기 예술 발견의 촉매로 이용했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삶에 누구보다도 충실했던 피카소야말로 ‘인간탐구’의 한 전범이 될 만한 인물이다.”

피카소에 문외한인 독자라면 속도감 있는 문체에 이야기 같은 서사구조의 책을 단숨에 읽어 나갈 것이며 ‘피카소에 대해 더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라고 생각하는 전문가라면 소설가인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발견한 새로운 피카소에 신선함을 느낄 것이다.

이를테면 이런 대목, 현대미술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는 피카소의 명작 ‘아비뇽의 아가씨들’을 소개하면서 저자가 붙인 주석 같은 것들 말이다.

“작가가 책을 내고 스트레스를 받는 일 중의 하나는 베스트셀러 순위를 볼 때다. 자신의 책이 한번도 베스트셀러에 끼어본 적이 없는 작가는 부아가 끓을 수밖에 없다. 안 팔리는 책의 작가는 그 바닥을 떠나지 않는 한, 평생 스트레스 속에 살게 된다. 그럴 때 필자는 반 고흐의 생애나 폴 세잔의 말년, 피카소가 ‘아비뇽의 아가씨들’을 완성한 이후를 생각해 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너무 앞서 갔다고 훗날 다 인정받는 것은 아니지만, 뛰어난 소수는 찬연히 부활한다.”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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