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즈]"아이와 책읽고 수다떨어 보세요"

  • 입력 2004년 4월 25일 17시 24분


‘엄마하고 책하고’ 가 23번째 모임을 갖고 있다. 왼쪽부터 정승윤군과 장인경씨, 김주원양과 정효경씨, 신우주양과 최경숙씨, 그리고 이희섭군.김진경기자 kjk9@donga.com
‘엄마하고 책하고’ 가 23번째 모임을 갖고 있다. 왼쪽부터 정승윤군과 장인경씨, 김주원양과 정효경씨, 신우주양과 최경숙씨, 그리고 이희섭군.김진경기자 kjk9@donga.com
토요일인 17일 오후 충북 청주시 용암동의 한 아파트에 각각 엄마 손을 잡은 초등학생 4명이 모였다. 아이들 손에는 모두 권정생의 ‘몽실언니’가 들려 있다.

‘엄마하고 책하고’ 23번째 모임이다. 최경숙씨(39·중학교 교사)와 신우주양(원봉초교 5년) 모녀가 ‘이달의 책’으로 몽실언니를 선정해 책모임을 이끌어갔다.

“몽실이하면 참을성이란 단어가 떠올라요.”(우주)

“몽실이 같은 아이를 ‘성인아이’라고 한대요. 아이들은 불우한 환경에서 자랄 때 몽실이처럼 조숙해지거나, 공부만 파고들거나, 혼자만의 세계에 몰입한다고 해요.”(최씨)

최씨의 설명에 정효경씨(44·성형외과 전문의)가 “우주 엄마 말씀을 들으니 이 책을 읽을 때 마음이 불편했던 이유를 알 것 같다”면서 “아이들에게 몽실이처럼 현실을 견디라고 강요하는 것은 아니냐”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정씨의 딸 김주원양(원봉초교 5년)은 “몽실이하면 넉넉한 마음 때문에 ‘하늘과 바다’란 단어가 떠 오른다”고 말했다.

이 모임에서는 아이나 엄마가 똑같이 토론에 참가한다. 엄마라고 해서 일방적으로 묻거나 아이들에게 모범답안을 요구하지 않는다.

최씨는 미리 ‘몽실언니’의 배경이 되는 6·25전쟁에 대한 자료를 나눠주었고 우주는 몽실언니에 대한 독후감을 써 발표했다.

미국에선 요즘 ‘머더-도터 북클럽’이 유행이다. 딸과 엄마들이 학교나 동네가 매개체가 돼 주 1회 혹은 월 1회 한 집에 모여 책에 대해 토론한다.

‘엄마하고 책하고’도 머더-도터 북클럽을 본땄다. 정씨가 98년 미국성형학회에 참석하러 갔다가 셔린 도슨의 ‘머더-도터 북클럽’이라는 책을 접하고 모임을 만들었다.

“어려서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다가도 초등 3학년만 돼도 그만두잖아요. 이 모임은 ‘자녀와 함께 책 읽기’의 연장이자 업그레이드라고 생각해요. 각자 읽고 즐기는 수준에서 더 나아가 책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나눌 수 있으니까요.”

정씨는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인 첫딸의 친구들과 엄마들, 자신의 친구들과 딸들 아홉 쌍으로 구성된 모임을 시작했다.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책을 참고하면서 나름대로 수정해 나갔다.

아들 정승윤군(대성초교 5년)과 함께 참여하고 있는 장인경씨(36·주부)는 “책모임에서 승윤이의 생각과 학교생활을 많이 알게 됐다”고 소개했다.

“황선미의 ‘나쁜 어린이표’를 얘기할 때였는데 승윤이는 자연스럽게 ‘한 친구가 학교에서 내가 선물을 줬으니 이것 해, 저것 해 하며 괴롭힌다’고 털어놓았어요.”

미국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1학년 때 귀국한 승윤이가 책모임을 통해 부족한 어휘력과 표현력을 익혀나간 것은 또 다른 소득이다.

윤혜미씨(44·대학교수)의 아들 이희섭군(대성초교 5년)은 “혼자 책 읽기도 싫고 독후감 숙제도 부담스러웠는데 친구들과 엄마와 함께하다 보니 자신감이 생기고 재미있다”고 털어놓았다.

책모임을 이끌어가는 발제자 역할은 매달 서로 돌아가면서 하기 때문에 자신의 차례가 될 때 아이는 리더십을 발휘하는 기회를 갖고 다른 아이가 이끌 때는 이해하고 협력하는 법을 익힌다.

가장 큰 장점은 책읽기건 모임이건 즐겁다는 것.

주원이는 “친구들과 더 친해졌다”고 말했고 우주는 “내 생각과 다른 사람 생각을 비교할 수 있고 글쓰기 실력도 늘었다”고 좋아했다.

책읽기는 어른들에게 유익했다. 장씨는 “아이와 엄마가 같은 책을 읽으니 공감대가 생기고 추억거리가 될 것 같다”고 평했다. 최씨는 “아이들 책이지만 정말 재미있고 아이의 생각을 읽을 수 있어 좋다”고 덧붙였다.

엄마나 아이나 책모임에서 다룰 책 하나만을 읽는 것은 아니다. 최씨와 우주는 ‘몽실언니’를 고르기 위해 도서관과 서점을 들락거리며 여러 책을 읽고 얘기를 나눴다. 모임을 시작한 뒤 텔레비전은 관심에서 멀어졌고 다른 식구들까지 책모임에서 선정한 책을 읽게 됐다.

갑자기 책모임이 노래모임으로 바뀌었다. 지난달 토론한 존 레이놀즈 가디너의 ‘조금만 조금만 더’에 대해 느낀 점을 노래로 만들어 부르는 순서였다.

주원이는 ‘바둑이 방울’을 개사해 “번개도 싱글벙글 할부지도 싱글벙글 모두다 윌리와 기뻐하겠지”라고 노래했고 우주는 ‘흥부가’에 맞춰 “목숨 바쳐 번개 충성 의지 강한 윌리정신 윌리 번개 힘을 합쳐 경주에서 승리했다”고 불렀다.

청주=김진경기자 kjk9@donga.com

▼‘엄마하고 책하고’…아이들이 추천하는 책▼

내가 나인 것(야마나카 히사시)

마녀를 잡아라(로알드 달)

안내견 탄실이(고정욱)

몽실언니(권정생)

아주 특별한 우리형(고정욱)

별 볼일 없는 4학년(주디 블룸)

꼬마거인(로알드 달)

비밀의 화원(프랜시스 호즈슨 버넷)

마틸다(로알드 달)

초록정거장(조영훈)

다이고로야, 고마워(오타니 준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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