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썽꾸러기 꼬마 토끼 피터! 영국의 유명한 작가 비아트릭스 포터가 만들어낸 사랑스러운 동물 친구.
피터 래빗은 너무나 유명해서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다. 그런데 호기심 많고 말썽꾸러기인 이 주인공이 백 년 전에 태어났다는 걸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백 년 동안 늙지도 않고, 철도 안 들고, 유행에 뒤떨어지지도 않은 채 버티고 있다니. 그러면서 언제나 아이들로부터 사랑받을 수가 있다니!
비아트릭스 포터가 피터 래빗을 만들어낸 건 앓고 있는 소년을 위로하기 위해서였다. 토끼의 이름을 짓고 들려주는 듯한 말투로 지어 보낸 이야기 편지. 다만 병든 소년을 위해 지은 이야기가 이제는 모든 아이들의 것이 되었다.
첫 번째 책인 ‘피터 래빗 이야기’에서 아빠처럼 잡혀 주인의 파이 속에 들어가지 않으려면 농장에 얼씬하지 말라는 엄마의 말을 듣지 않는 꼬마 토끼 피터. 피터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아이들이 이야기 속에 빠지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비아트릭스는 한명 한명의 아이들을 위해서 다람쥐에게도 오리에게도 돼지에게도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이들을 사람의 이웃으로 인정하고 이들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도록 배려하는 자세를 보여준다. 주인공 속에 숨어든 작가가 아니라 농장에 사는 농부의 모습으로 동물들과 함께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한꺼번에 많이 태어난 돼지들이 천방지축으로 날뛰면서 물려고 달려들었을 때 비아트릭스는 어미돼지에게 따끔하게 말한다(피글링 블랜드 이야기).
“프티토즈 아주머니, 프티토즈 아주머니! 아이들을 좀 잘 키우셔야겠어요.”
세탁부 고슴도치 티기 윙클(티기 윙클 부인 이야기)은 읽는 순간 머릿속이 환해지도록 상상력을 자극한다. 앞치마와 머릿수건 밖으로 뾰족뾰족한 가시가 튀어나왔어도 마음 좋아 보이는 세탁부 아주머니는 들판이며 집 주변 동물들의 옷가지를 죄다 빨고 다림질하여 배달해준다.
피터 래빗의 파란 조끼, 울새 로빈의 붉은색 윗도리, 굴뚝새 제니의 장미색 테이블보, 암탉 샐리의 스타킹. 세상에, 암탉의 노랗고 길쭉한 스타킹이라니! 그것도 마당을 긁어대느라고 발가락 쪽이 닳았다니! 이렇듯 유연한 상상력이 귀족주의 시대를 살던 작가의 것이라는 게 놀랍고도 아름답다.
작가는 1866년 부잣집 딸로 태어났으나 호반지방에서 농부로서 평생을 살았다. 자연보호단체인 내셔널트러스트에 무려 500만평에 이르는 땅을 기증해 호반지방을 무분별한 개발에서 지켜낸 주인공이기도 하다.
피터 래빗 시리즈에 등장하는 동물들은 사람에게 길들여지거나 사람에게 속하지 않은 채 자신들의 영역에서 나름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생태계를 위협하고, 강한 동물을 길들여서 위에 서고 싶어 하고, 약한 동물은 보호해야 한다고 착각하는 지금의 우리에게 피터 래빗과 그의 친구들은 분명한 메시지를 전한다.
어려운 말을 쓰지도 않고 사상을 강요하지도 않고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사람의 이웃에 사람만 사는 게 아니라는 것! 유쾌하게 읽은 뒤에 남는 감동은 어떤 요구보다 강력하다. 이것이 바로 동화이다.
황선미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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