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연탄도 마우스도 과천으로 오라하네

  • 입력 2004년 4월 25일 17시 51분


생활 속 소품들을 예술가들의 독특한 상상력으로 빚어 낸 설치 작품전인 ‘일상의 연금술’전에 나온 최정현 작 ‘네티즌’(2003년). 중고 마우스를 조합해 뱀 모양의 작품을 만든 작가는 정보화사회의 총아라 할 수 있는 컴퓨터 소품들이 현실을 표현하는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사진제공 국립현대미술관
생활 속 소품들을 예술가들의 독특한 상상력으로 빚어 낸 설치 작품전인 ‘일상의 연금술’전에 나온 최정현 작 ‘네티즌’(2003년). 중고 마우스를 조합해 뱀 모양의 작품을 만든 작가는 정보화사회의 총아라 할 수 있는 컴퓨터 소품들이 현실을 표현하는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사진제공 국립현대미술관
신록이 짙은 경기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은 평일인데도 단체관람을 하러 온 청소년들로 붐볐다. 미술관에 갈 때마다 지하철과 셔틀버스를 갈아타고 기다리는 일이 번거로워 시민들과 가장 가까워야 할 현대미술관을 이런 ‘고도(孤島)’에 만든 사람들에 대한 원망이 일긴 하지만, 일단 미술관 경내로 들어서면 딴 세상이다. 마음의 번잡함은 사라지고 숲과 그림이 주는 휴식과 평안에 빠져들기 때문이다.

마침 5월은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시가 절정에 이르는 달. 어린이들부터 중장년층까지 아우르는 재미있는 전시들이 관람객을 기다리고 있다. 주말이나 한가한 평일에 도시락을 싸서 가족이나 친구, 연인과 함께 나들이를 가보면 어떨까.

○ 만화, 국립현대미술관 담을 넘다 미술관 1층 원형 전시실에 들어서면 해외 유명작가 소장품들이 대폭 늘어났음에 놀란다. 지난해 작품구입예산이 42억원(전년도 27억원)으로 늘어난 덕에 빌 비올라의 비디오작품 ‘의식(儀式)’(2002), 볼프강 라이프의 조각 ‘쌀집’(2001∼2002), 게리 시몬즈의 회화 ‘갇혀진 부재’(2002), 안드레아스 세라노의 사진 ‘생각하는 사람’(1998), 이미 크뇌벨의 회화 ‘새로운 사랑-4’(2002) 등 새 작품들을 많이 들여 놓았다.

박불똥작 ‘작품에 손대지 마시오’

6월 27일까지 1전시실과 2전시실에서 열리는 ‘미술 밖의 미술’전과 ‘일상의 연금술전’은 5월 전시의 하이라이트. 그동안의 거장 위주 기획에서 벗어나 탈 장르, 탈 권위라는 시대적 조류에 맞춰 미술관이 내놓은 참신한 기획전이다. 미술하면 무조건 어렵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어! 이런 것도 미술이야?”하는 웃음과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미술 밖의 미술’전은 말 그대로 그동안 미술이 아니라고 여겨졌던 ‘미술 밖’의 분야, 즉 타이포그래피, 사진, CF, 애니메이션, 만화, 무대미술 등의 장르들을 과감하게 수용한 전시. 전시장에 들어서면 안상수 금누리씨의 그래픽디자인을 처음 만나게 되고 이어 구본창 김중만 오형근 조세현 권영호 김용호 윤형문씨의 사진작품들을 볼 수 있다. 연예인들의 대형사진, 눈에 익숙한 영화포스터 등을 두루 섭렵하면 우리나라 상업사진의 현주소가 읽힌다.

이어 만화 부스에서는 박재동씨를 비롯해 ‘비빔툰’ 시리즈의 홍승우씨, ‘또디’ 시리즈의 정연식씨, 성인 유머만화의 독특한 장르를 개척하고 있는 양영순씨의 작품들을 만나게 된다. 작가들의 유머러스한 상상력 덕분에 시종일관 웃음이 배어 나온다. 더구나 국립현대미술관이라는 공간에서 만나는 만화라니, 바야흐로 미술도 장르 면에서 주류의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신선함이 느껴진다.

노상균작 ‘부처의 장갑’

○ 라디오 모양의 다리미, 다리미 모양의 주전자

2전시실에서 열리는 ‘일상의 연금술전’은 생활 속 소품들을 예술가들의 독특한 상상력으로 빚어 낸 설치작품전. 작품 하나하나가 기발하고 재미있다.

남자 소변기나 자전거 휠을 그대로 전시해 전통적 미술작품의 틀을 바꾼 현대미술의 창시자 마르셀 뒤샹의 한국 후예들을 만난 듯하다.

만화 ‘반쪽이 시리즈’로 유명한 최정현씨는 버려진 마우스와 컴퓨터 부품으로 뱀을 만들었고 이재효씨는 굴착기 부품으로 악어를 만들었다.

박불똥씨는 근대화와 서민생활의 고락을 상징하는 연탄을 제단처럼 쌓아놓고 ‘작품에 손대지 마시오’라는 제목을 붙였다.

초두수작 ‘짧고 달콤한 마법같은 시대를 위한 징후’

실제 방송된 텔레비전의 메인 뉴스를 짜깁기해 전혀 다른 문장을 만든 김범씨의 ‘뉴스콜라쥬’나 ‘라디오 모양의 다리미’ 등의 작품은 질서에 대한 상식을 깨 버린다.

이 밖에 스테인리스 철망으로 베개 방석 이불을 만든 박계훈씨, 면장갑을 평면에 수없이 붙여 대형화면을 만든 정경연씨, 반짝이(시퀸)라는 싸구려 재료로 부처의 손을 만든 노상균씨, 가는 국수를 무수히 뿌려 호텔 방 내부를 만든 조성묵씨, 룸살롱에서 쓰는 싸구려 금장 접시 위에 모조 보석들로 만든 가짜 디저트를 올려놓은 정소연씨 등의 작품이 선보인다.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현대미술관 가려면…▼

지하철을 타고 갈 경우 셔틀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4호선 서울대공원역 4번 출구로 나오면 오전 9시부터 20분 간격으로 버스가 운행된다. 입장료는 어린이 청소년 1000원, 대학생 성인 2000원. 개관시간은 오전 9시∼오후 6시. 토일 공휴일은 오후 7시까지 연장. 문의 www.moca.go.kr, 02-2188-6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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