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피플]‘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주연-감독 성현아&홍상수

  • 입력 2004년 4월 27일 18시 06분


홍상수 감독은 말한다. “내 영화에는 사회의식이라든지 사회의 아픔을 매만져준다든지 카메라 워크가 세련됐다든지 하는, 한마디로 얘기하기 좋은 건 하나도 없다. 내 영화를 경쟁부문에 수용한 것만으로도 칸은 어려운 결정을 한 것이다.” 박주일기자
홍상수 감독은 말한다. “내 영화에는 사회의식이라든지 사회의 아픔을 매만져준다든지 카메라 워크가 세련됐다든지 하는, 한마디로 얘기하기 좋은 건 하나도 없다. 내 영화를 경쟁부문에 수용한 것만으로도 칸은 어려운 결정을 한 것이다.” 박주일기자
≪올해 프랑스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오른 홍상수 감독의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5월 5일 개봉 예정)가 최근 시사회를 통해 공개됐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강원도의 힘’ ‘오, 수정’ ‘생활의 발견’에 이은 홍 감독의 다섯 번째 작품. 선후배 관계인 헌준(김태우)과 문호(유지태)가 낮술을 먹다가 문득 7년 전 두 사람이 잇달아 사귀었던 선화(성현아)를 떠올리고 무작정 그녀를 찾아가는 내용이다. 컷을 나누지 않고 7분 이상 연속해 찍는 롱 테이크 기법을 통해 ‘일상’ 속에 숨은 ‘비일상’을 유쾌하고 냉소적으로 파헤치는 홍 감독(43). 2002년 마약복용 혐의로 구속, 같은 해 말 누드사진 공개 파문 등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가 이번에 화려하게 재기해 칸의 레드 카펫을 밟게 된 성현아(29). 이 영화를 관통하는 3개의 키워드에 대한 두 사람의 생각을 들어보았다.≫

○여자의 과거:“약속시간에 왜 늦었어”(헌준) “(한 선배에 의해) 여관으로 끌려갔거든. 거기서 강간당했어”(선화) “너 내가 섹스해야 깨끗하게 되는 거야. 알았지?”(헌준) “나 깨끗하고 싶어. 깨끗하게 해줘.”(선화)

성현아=나의 과거에 대해 “안 했어요”하고 부정하고 싶진 않다. 누드집도 그렇다. 이 영화로 다 털어낸다. 꼬리표처럼 붙어 다니던 나의 과거, 사람들의 선입견들 모두 털어낸다. 이 영화로 감독님과 다른 배우들에게서 좋은 에너지를 받아간다.

홍상수=성현아와는 뜻이 맞았다. 배우로서의 기술이나 기존 이미지보다는 열정이랄까, 영화를 통해 새로운 걸 열망하는 그런 인물됨…. 배우로서 말고 진짜 성격이 느껴졌다.

○일상:“다리에 털이 많네요.”(성관계를 막 끝낸 문호) “털 많죠. 요새 안 깎아서.”(선화) “다리털도 깎는 거구나.”(문호)

홍=섹스라는 행동을 통해 나는 우리가 가진 의식의 허구성을 쳐다본다. 선배 헌준은 순결의식이란 관념에 묶여 고민하는 데 반해, 후배 문호는 “머리 스타일이 바뀌었네요” “신음소리가 너무 예뻐요” “다리에 털이 있네요”라며 바보처럼 육체에 연연한다. 그런 대비가 재미있다. 섹스신은 늘 내게 ‘행위’만이 아닌, 대화 또는 갈등이 내재된 하나의 ‘조각(piece)’으로 다가온다.

성=학교 다닐 때 미팅에 나가서도 그렇지 않나. 이에 고춧가루가 낀 것만 봐도 너무 싫어. 어림 혹은 젊음이란 이런 거 아닐까. 여자의 다리털에도 몸서리치는 남자. 그래서 헤어질 결심을 하는 남자.

(홍 감독은 실제로 소주를 마시고 촬영장에서 잔 뒤 일어나자마자 부스스한 얼굴과 목이 잠긴 상태로 촬영에 들어갈 것을 성현아에게 주문했다. 성현아는 “홍 감독님의 영화 속 여배우는 비비안 리처럼 ‘아, 잘 잤다’하면서 예쁘디 예쁘게 일어날 수가 없다”며 웃었다.)

성현아는 말한다. “사랑한다고 말하는 남녀간에도 이해 못할 대화가 난무하잖아요? 사실 돌출행동과 순간들도 삶의 일부분이죠. 이런 ‘진짜 삶’을 연기해야 한다는 게 가장 큰 스트레스였어요.” 변영욱기자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내가 뭐라 그랬죠. 절대 하지 말라고 그랬죠.”(선화의 치마 속을 문호가 더듬자) “정말 못 들었어요.”(문호) “남자들은 다 똑같아. 안아만 주면 진짜 같이 누울 수도 있었는데.”(선화)

홍=제목이 지나치게 단정적이다. 하지만 나는 아무리 들어도 멍하고 잡히지 않는 말이다. 이런 괴리감이 나를 흥미롭게 했다.

제목이 영화를 꼭 설명할 필요는 없는 것 아닌가. ‘남자는 여자의 미래다’고 한들…. 나는 뚜렷한 메시지를 정하고 이를 전달하기 위해 디테일을 짜내지 않는다. 반대로 조각(디테일)들이 내게 먼저 다가오면 이들을 하나로 만들어 낸다. 관객의 반응을 본 뒤에야 ‘아, 내가 드러내고 싶었던 게 이런 거구나’하고 거꾸로 느낀다. 내 아이(작품)에게는 다 정이 가는 법이지만, 정작 아이(작품)의 성격은 담임교사나 친구들의 얘기가 더 객관적인 법 아닌가.

성=남자들이 속물이라고? 아니. 너무 귀엽다. 자신을 용서하라며 선화 앞에서 “(담뱃불로 나를) 지져줘”하는 헌준 같은, 남자들의 객기가 귀엽다. 남자는 자기감정에 충실한 동물이다. 남자 둘이 술 먹다가 갑작스레 과거의 여자를 생각하고 일방적으로 여자를 찾아가지 않는가. 그런 남자들을 한 여자가 품어준다.

그런 여자는 지나간 여자이든 앞으로 닥칠 여자이든 ‘남자의 미래’일 수 있다. 단, ‘미래’가 늘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남자들은 명심하길 바란다.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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