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은 젊은이들의 관심이 크지만 내부 ‘생태학’이 잘 알려지지 않은 사법연수원의 세계를 솔직하면서도 흥미롭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드문 사례다. 작가는 자신이 경험한 실제 현실과 허구를 적절히 섞어 소설을 썼다.
2001년 경기 일산신도시로 이사하기 전 서울 서초동 시절, 연수원 도서관의 좌석 수는 매년 판검사 임용자 숫자인 200석 정도였다. 자리 잡기 경쟁이 심했고 자리마다 이름이 달랐다. 가장 좋은 창가 구석은 경판(서울 판사)실, 그 다음이 향판(지방 판사)실, 검찰실이었다. 연수원 근처 독서실 자리를 비싸게 얻으면 ‘로펌족’, 연수원 교실에 모여 공부하면 ‘합동법률사무소’, 집에서 혼자 공부하면 ‘개업변호사’였다.
연수생들은 영화 ‘친구’를 보러 가서도 관심사가 달랐다. 살인을 한 ‘유오성’이 입은 죄수복의 하얀 명찰은 일반 잡범이 다는 것이고, 사실은 빨간 색이어야 한다는 식이다.
이번 소설은 제도권 문단에 데뷔하지 않은 ‘아마추어’가 썼지만 체험에 젖줄을 댄 덕분인지 몇 가지 분명한 미덕을 갖고 있다. 생생하면서도 깔끔한 구어체 문장에, 내용이 다채롭다. 무엇보다 캐릭터들의 컬러가 뚜렷하다.
‘한크라테스’ 교수는 ‘하버드 법대 랑델 학습법’이라 불리는 표적식(式) 집중 질문으로 연수생들의 피를 말리지만 술만 마시면 ‘시험공부하지 말라’고 말하곤 한다. 재학 중 고시3과를 모두 패스한 ‘천재소년’, 아무래도 ‘천재소년’을 따라갈 수 없지만 싸늘한 경쟁심만은 냉동고를 방불케 하는 서울 상류층 모범생 세민이, 남자 같은 성품이지만 예뻐서 인기가 좋은 예진이, 노란 머리에 스포츠카를 모는 야구광, 하도 느려서 어떻게 사법시험에 합격했는지 의문이 드는 ‘여태 형’ 등이 그렇다.
정씨는 “노랑머리의 경우 2001년 연수원에 처음 등장했을 때 법조계에서 다들 충격으로 받아들였지만 지금 그런 연수생은 열 명도 넘는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정씨 본인에 해당할 만한 캐릭터는 유쾌한 과장, 어이없는 실수를 거듭하는 ‘정덕기’다. 그러나 암을 앓던 정덕기의 어머니가 사법시험 3일 전 숨진 사실을 가족들이 일부러 알려주지 않아 시험이 끝난 후에야 눈물을 흘리며 장례를 치르는 일 등은 작가 본인의 체험이다.
정씨는 “헤르만 헤세가 소설 ‘유리알 유희’에서 작가를 가장 위대한 미래 직종으로 그려놓은 게 매우 인상적이었다”며 “이번 소설에선 연수원 내부 생활이 주가 되는 1년생의 삶을 그렸지만 앞으로 판검사 시보생활을 하는 연수원 2년생의 일상을 좀 더 비판적인 시선에서 써 볼 계획”이라고 밝혔다.
권기태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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