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의 기록 문화 또한 국가에 못지않았다. 이순신 장군의 승전과 백의종군의 고뇌가 담긴 저 유명한 ‘난중일기’와 김구 선생의 뜨거운 애국 혼이 절절한 ‘백범일지’가 그것이다. 전란과 독립운동의 절박한 상황 속에서도 붓을 멈추지 않은 것이다. 전국 각지 명문 종가에서 소장하고 있는 선비들의 문집과 서한 또한 한국인들의 놀라운 기록 문화 전통을 보여준다. 내세를 인정하지 않은 유교의 선비들은 모든 사실을 기록으로 남겨 후대 사가(史家)들로부터 정당한 평가를 받기 원했다.
▷그러나 조상들의 이 같은 기록열(記錄熱)은 일제강점기를 거쳐 현대에 이르며 쇠퇴해 간다. 엘리트 사관(史官) 2명으로부터 언행 하나하나를 샅샅이 감시당했던 왕들에 비해 대한민국의 역대 대통령들은 ‘독대(獨對)’를 선호했다. 재임 시 중요 정책 추진에 관한 알짜배기 문건은 일찌감치 소각 또는 폐기처리하거나 퇴임 후 정치적 거래 등을 염두에 두고 사저로 가져갔다. 정부가 국가기록에 대한 체계적인 정비에 나선 것은 광복 55년이 지난 2000년 ‘공공기록물관리에 관한 법률’이 공포되고 나서였다.
▷한국국학진흥원이 동아일보와 함께 ‘유교 10만대장경 수집 국민운동’에 나서기로 한 것은 우리의 자랑스러운 기록 문화 전통을 되살리기 위함이다. 전문가들의 추산에 따르면 조선시대에는 문집 간행 등을 위해 민간에서만 최소 40여만장의 목판이 판각됐다고 한다. 원 소장자의 소유권을 인정해 주기 때문에 각 문중에서도 이전과는 달리 관심과 기대를 보이고 있다고 하니 아무쪼록 ‘불교 8만대장경’을 능가하는 성과를 거두게 되기 바란다.
오명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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