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니다, 똥.
나요, 정말 힘들게 살아왔습니다. 사람들은 내 이름을 부르는 것조차 꺼립니다. 내 이름은 더럽고 천하고, 나쁜 데 쓰이죠.
예부터 우리집(화장실)은 후미진 곳에만 있었답니다. 안 싸고 사는 사람 있습니까. 나는 사실 밥과는 한 몸입니다. 밥이 소화되면 내가 되고, 땅에서 밥의 양분이 되어 나는 다시 여러분의 입으로 돌아갑니다.
프로이트는 배설에 대한 인간의 편협한 태도를 질타하면서 “인간의 실존적 조건을 본성이 허락하는 대로 복권시키고 고유한 위엄을 되찾아 주자”며 나를 두둔했지요. 그런데 요즘 다들 나를 새롭게 보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나오는 구멍이 고장 난 사람이 많다더니만 광고에 내 얼굴이 버젓이 실리고, 나를 깨끗이 닦아내는 비데란 것도 인기더군요. 몇몇 사람들은 잘 쌌으면, 잘 되돌리라면서 수세식 화장실에 반기를 들고 나섰더군요. 똥은 땅으로 가야 하지, 물로 갈 게 아니라면서요. 웰빙 바람 덕분에 내게도 햇살이 비치나 봅니다. 잘 먹고 잘 사는지가 결국 내게서 실현된다는 거죠.
도올 김용옥 선생은 “내일 완벽한 똥을 눌 수 있도록 오늘 하루를 잘 살라”고 했지요.
이제야 제대로 어깨 펴고 살까 합니다. 여러분도 한 번 생각해 보세요.
당신의 똥, 행복하십니까?
○ 세상밖으로
최근 신문과 인터넷에 정체불명의 바나나가 등장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바나나 모양의 배설물. M사 ’바나나똥’ 광고다. 자사의 기능성 발효유를 먹으면 바나나와 모양, 길이, 색깔, 질감이 비슷한 건강한 똥을 쌀 수 있다는 내용. 대중매체에 똥을 노골적으로 표현한 ‘용감한’ 시도다. 지난해 6월에는 TV에 처음으로 비데 광고가 등장했다. 뒤를 씻는 즐거움을 표현한 W사의 광고다. C사는 아무리 미녀라도 뒤를 씻지 않은 엉덩이는 의자가 피해 간다는 광고를 내보냈다.
똥 또는 배변행위를 직접 연상시키는 이 같은 광고는 예전 같으면 상스럽다는 비난을 들었을 만한 내용. 선정적인 이미지로 마케팅 효과를 노리는 상술일 수도 있지만 그만큼 우리 사회의 똥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들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젊은 층에서는 이미 똥에 대한 논의가 자연스러워진 지 오래다. “세상에 똥침 찌르기’를 표방한 딴지일보의 출현 이후 똥이 공론화되기 시작했고 최근엔 똥 모양의 쿠션, 저금통, 인형과 액세서리를 팬시용품점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 잘 먹고 잘 싸자
기상캐스터 이익선씨(35)의 새신랑 박상원씨(41·선일회계법인 대표)는 대표적인 ‘똥 웰빙족’이다. 이들 부부는 매일 아침 밥상머리에서 똥과 음식, 컨디션에 대한 ‘반성의 시간’을 갖는다.
“아침에 성공했나.” “색깔이나 모양은 어땠나.”
박씨는 소개팅 후 세 번째 데이트 때부터 똥을 줄곧 대화 소재로 삼아왔다. 변비로 고생하던 이씨는 너무나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의 똥마저 걱정해주는 박씨에게 매력을 느꼈다. 어색했던 데이트 분위기가 갑자기 친근하고 유쾌해졌다.
김순홍씨(28·여)는 M사 이벤트에 시댁, 친정 식구들과 함께 참여했다가 똥을 ‘재발견’한 경우. 이 회사 기능성 발효유를 일정기간 마시면서 똥의 변화를 진단받는 이벤트다.
김씨 가족들은 평소 서로의 건강은 챙기면서도 차마 똥 상태까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젠 시누이, 시동생 할 것 없이 모두 스스럼없이 똥 얘기를 한다. 김씨는 “가족 건강은 최종적으로 똥에서 확인된다”며 “그동안 정말 가깝고 중요한 것을 소홀히 해왔다”고 말했다.
박씨나 김씨 같은 사람들이 늘고 있다. 동아일보 위크엔드팀이 아이클릭과 공동으로 23, 24일 온라인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20∼40대 성인남녀 500명)의 90.0%가 대변 건강이 몸 전체의 건강에 중요하다(매우 그렇다 33.0%, 그런 편이다 57.0%)고 답했다. 또 매번 변 상태를 확인한다는 응답자가 65.4%, 대변 횟수나 상태에 신경을 쓴다는 응답자도 54.6%나 됐다.
똥 건강과 직접 관련된 산업의 연간 매출은 기능성발효유 4300억원, 비데 3000억원, 변비약 310억원, 치질 관련 의료비 지출액 2400억원 등만 따져 봐도 1조원을 넘는다. 국민 1인당 연간 2만원이 넘는 액수를 쓰고 있다는 얘기다. 잘 먹고 잘 사는 것은 결국 잘 싸는 것으로 귀결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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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을 죽이는 똥
화장실은 날로 진화하고 있다. 비데는 중산층의 필수품이 됐고, 사람의 움직임에 따라 작동하는 ‘똑똑한 변기’도 나왔다. 요즘엔 카페처럼 잘 꾸민 화장실도 많다.
그러나 정작 주인공인 똥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옛말에 ‘기회자 장삼십, 기분자 장오십’이란 말이 있다. 재를 버리면 곤장 30대, 똥을 버리는 자는 곤장 50대라는 뜻. 똥이 유일한 비료이자 효과적인 자원이었던 시절의 얘기다.
똥의 가치는 20세기 초 서구에서 재평가받기 시작했다. 미국 농림부 토양관리국장을 지낸 프랭클린 히람 킹 박사(1848∼1911)는 인분을 땅으로 되돌리는 동양식 농법을 극찬했다. 그는 저서 ‘사천년의 농부들: 중국과 한국, 일본의 영구적 농업’에서 “모든 종류의 분뇨는 퇴비가 돼 땅에 뿌려지며 이는 서양보다 훨씬 효율적이다”고 적었다.
서양인들의 동경을 받았던 인분 퇴비는 이제 동양에서 자취를 감췄다. 멀쩡한 물에 똥을 흘려보내는 수세식 화장실 시스템이 농촌까지 파고들어 전국의 90%를 차지한다.
수자원공사에 따르면 하루 평균 성인이 소비하는 변기용 물은 42L. 생활용수 가운데는 27%를 차지해 가장 많다. 물 부족 시대를 더욱 앞당기는 큰 요인이다.
분뇨는 전국 191개 처리장에서 정화되고 있지만 수질기준을 초과해 하천에 방류되기도 한다. 지난해 각 지자체가 71개 단독분뇨처리장을 점검한 결과 강원 대구 전북 등의 8개 시설이 기준을 초과했다. 땅에서 생명을 움틔우던 똥이 오염의 주범으로 전락한 것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전체 분뇨처리장의 연간 운영비만 761억원. 분뇨처리시설은 썩거나 마모되기 쉽기 때문에 교체, 수리하는 데에도 연간 300억원이 더 든다.
전통적인 인분 퇴비가 차츰 사라지고 있는 가운데 요즘 다시 그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 땅을 살리는 똥
전남 순천 선암사 해우소는 집단식 생태형 뒷간을 구현한 흔치 않은 사례. 연간 수천 명의 신도들이 찾는 이곳 해우소는 산비탈에 설치돼 인분이 밑으로 저절로 흘러 발효된 뒤 바로 밭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배설물이 땅을 통해 다시 음식물이 되는 완전 순환계다.
이런 생태형 뒷간을 보급하기 위해 전국귀농운동본부(02-742-4611)가 적극 알리고 나섰으며 일부 유기농 농부들이 인분 퇴비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인분 퇴비를 만들려고 해도 퇴비로 쓸 인분이 턱없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전국적으로 5만t 가까운 인분이 발생하고 있지만 대부분 정화처리 되기 때문.
대부분의 분뇨 처리 전문가들은 생태형 뒷간 활용 가능성에 고개를 젓는다. 인분이 가장 훌륭한 비료라는 데는 동의하지만 실현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박완철 박사는 “현재로서는 효율적인 정화공정과 정화율이 높은 미생물을 개발해 수자원 낭비를 최대한 줄이는 것이 최선”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자연을 꿈꾸는 뒷간’(들녘)의 저자인 이동범씨(41)는 “학교나 군부대, 공원 등을 중심으로 실천 가능한 한도 내에서 생태형 뒷간을 확대할 수 있다”면서 “매일 변기 물을 내리는 사람들에게 똥과 땅, 물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교육의 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똥을 땅으로 되돌리는 것도 힘들어진 지금, 우리는 너무 멀리 와 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글=곽민영기자 havefun@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정인성기자 71jis@donga.com
▼쾌변 10계명▼
1. 때맞춰 꼬박꼬박 잘 먹어라
2. 차지 않은 물을 하루 10컵 이상 마셔라
3. 채소·해조류를 하루 세 접시 이상 먹어라
4. 음식을 골고루 먹어라
5. 적절하게 운동하라
6. 김치로 유산균 섭취를
7. 과음 커피 탄산음료를 피하라
8. 변비약 남용 절대 금지
9. 신호가 오면 참지 말라
10. 화장실을 깨끗하고 편안하게 가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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