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인간은 자연의 아주 작은 일부인데…”

  • 입력 2004년 4월 30일 17시 24분


◇흐르는 강물 따라·흙에서 흙으로/이도원 지음/각 230쪽 안팎 각 2만원 사이언스북스

인디언들은 도서관이나 실험실이 없이도 ‘만물은 서로 굳건하게 연결되어 있고, 사람은 자연의 아주 작은 일부일 뿐’이라는 것을 느끼고 알았다. 어디 인디언뿐이랴. 산업사회로 진입하기 전에는 우리 조상들도 ‘물과 흙이 흐르는 이치’를 절로 체득했고, 자연의 순환에 순행했다. 자연이 학교였고, 삶이 곧 생태적 실천의 기회였기 때문이었다.

생태학자인 저자(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가 최근 펴낸 두 책은 비록 ‘과학적 합리성’의 개념으로 ‘어렵게’ 말하고 있지만 끝내 세상에 드러내려는 메시지는 인디언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두 권으로 나뉘었지만 이 노작(勞作)은 본래 이어진 한 편의 글이다.

저자는 자연과학자답게 환경문제를 공간 또는 토지 이용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설정한다. 생태계는 이때 ‘에너지와 물질, 그리고 생물과 정보’가 생성되고 소비되는 평형에 대한 소망 속에서 파악된다. 바로 저자가 기대고 있는 경관(景觀)생태학의 개념이다.

여기서는 강가의 ‘숲띠’나 논의 ‘덤붕(웅덩이)’과 같은 식생완충대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평형은 이미 깨졌고 완충대도 파괴됐다. 서둘러 경제성장을 이루겠다는 군사문화는 ‘강과 흙과 그 사이의 숲’에서 주고받으며 공생하고 있던 생명의 흐름을 단절시켰다. 무지가 바로 무기였다. 저자는 무지와 조급성이 저지른 파괴를 드러내기 위해 강의 본류보다는 강터의 숲띠나 시궁창, 점봉산 눈 밑의 꽃을 찾는다. 가장자리와 외진 곳에 대한 애정 때문이다. 그리고 빗물을 받아쓰던 조상들의 지혜와 외국의 여러 노력들을 소개한다.

책의 전체를 관류하고 있는 ‘강물과 흙’에 대한 치밀한 관찰과 분석을 끝까지 따라가기만 한다면, 누구든지 흐르는 강물과 딛고 있는 흙에 대해 전과는 다른 시선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 새로운 발견을 바로 저자가 소망하지 않았을까 싶다.

자주 시를 인용하는 저자는 ‘더 큰 인문학’에 대한 소망을 피력한다. 그것은 아마도 ‘인간은 지구라는 이 서식지를 다른 생물종에게 물려줄 준비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비관론에 바탕하고 있을 것이다. 오만한 인간중심주의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겸허한 인문적 비관론일지도 모른다. 저자가 ‘자기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개체들이 자연세계에서 장기적으로 선택받지는 못할 것’이라고 토로할 때, 독자는 저자의 도덕성과 체온을 느끼게 된다.

그렇지만 환경운동하는 글쟁이로서 이 책에 대한 아쉬움도 분명 있다. 점봉산 고사목에 붙어사는 벌레와 마을 숲의 소실에 대해서는 가슴앓이를 하면서도, 일테면 새만금 간척사업이라는 미증유의 대규모 생명파괴에 대해서 이 책은 단 한 마디 언급도 없다. 자신의 주제가 아니어서일까. 그 비슷한 지적에 대해 저자는 “아직 학문적으로 단단하지 못해서”라고 고백한다. 고백의 용기는 감동적이지만 공부란 대체 무엇인가? 이 책이 던지는 또 하나의 화두라 할 만하다.

최성각 소설가·풀꽃평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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