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오전 7시경 서울 관악구 신림동 A스크린경마 게임장. 40여명이 담배 연기가 자욱한 홀에서 게임기 앞에 앉아 가상 경마게임에 몰두하고 있었다.
허름한 옷차림의 한 40대 남성은 “이틀 동안 60만원을 날렸다”면서도 “일어서려고 할 때 마다 큰 게 터진다”며 자리를 뜨지 못했다.
아르바이트생 김모군(23)은 “대부분 여기서 밤샘 게임을 한 손님들”이라며 “100만원 넘게 잃은 분들에게는 교통비 정도는 돌려드린다”고 귀띔했다.
최근 ‘스크린 경마’가 크게 늘고 있다. 이는 대형 스크린에서 가상 경마게임을 벌인 뒤 배당금으로 상품권을 지급하는 일종의 도박.
스크린경마는 게임당 걸 수 있는 최대 액수가 36만원에 이르는 데다 하루 500회까지 24시간 계속 게임을 할 수 있는 등 사행성이 강하지만 아무런 규제도 받지 않고 있다.
▽걸고 또 걸고…인생 ‘올인’의 유혹=스크린경마는 실제 경마를 생중계하는 장외경마장과 달리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하는 경마다. 참가자들은 약 2분간 제공되는 가상 경주마에 대한 정보를 보고 말을 골라 돈을 건다. 한 차례 경마에 최소 1포인트(50원)에서 최대 6000포인트(30만원)까지 걸 수 있다. 참가자들은 300(1만5000원)∼400포인트(2만원)를 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참가자들은 실제 경마와 같이 자신이 고른 말의 등수와 건 돈에 따라 배당을 받는다. 이들은 100포인트당 5000원짜리 상품권을 받아 외부 상품권 교환업소에서 일정액을 할인해 현금화한다. 100포인트 미만 점수는 자동으로 다음 게임 포인트로 전환된다.
스크린경마는 게임방식에 따라 한 차례 경마에 120여곳이나 베팅할 수 있고 1회 게임 진행 시간이 5분에 불과해 짧은 시간에 많은 돈을 날릴 위험성이 크다.
스크린경마는 컴퓨터 프로그램이어서 조작이 가능할 수도 있지만 실제 조작이 이뤄지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지난달 22일 오후 10시경 서울 서대문구 신촌로터리 한 게임장에서 10분에 한 번꼴로 1만원을 500원짜리 동전으로 환전하던 한 50대 남성은 “한 달 동안 막노동으로 번 돈의 절반을 이틀 만에 날렸다”면서도 “계속 잃다가 한 번 따면 기분이 좋아 또 하게 된다”고 말했다.
▽규제와 단속 필요=경마, 복권 등 사행성이 높은 업종은 ‘사행 행위 등 규제 및 처벌 특례법’에 의해 시행 횟수, 베팅 금액 등에 대한 규제를 받는다.
하지만 스크린경마는 ‘음반·비디오물 및 게임물에 관한 법률’에 따라 ‘성인용 게임’으로 분류돼 이 같은 규제를 받지 않는다. 또 지방자치단체에 등록만 하면 운영이 가능해 최근 우후죽순처럼 확산되고 있다.
지난달 23일 하루 3000만원의 수입을 올린 서울 동작구 사당동 소재 한 경마게임장을 둘러싸고 조직폭력배들이 이권 다툼을 벌이다 12명이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영상물등급위원회는 최근 업소용 게임물 등급분류 개정안을 마련하는 등 대책 강구에 착수했지만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제도 정착이 시급한 실정이다.
‘마음사랑 상담센터’ 이민식 박사(40)는 “얼마를 딸 수 있는지 예상하기 어려운 오락일수록 중독성이 강하다”면서 “건강한 사회를 위해 적절한 규제와 단속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전지원기자 podragon@donga.com
전지성기자 verso@donga.com
손택균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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