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 안되니 이거라도…” 스크린경마의 유혹

  • 입력 2004년 5월 2일 18시 22분


지난달 22일 오후 11시경 서울 서대문구 신촌로터리 인근의 한 스크린경마장에서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스크린경마에 몰두하고 있는 사람들. -손택균기자
지난달 22일 오후 11시경 서울 서대문구 신촌로터리 인근의 한 스크린경마장에서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스크린경마에 몰두하고 있는 사람들. -손택균기자
“5번 마(馬)가 앞서는 가운데 9번 마가 뒤쪽에서 치고 나옵니다!”

지난달 30일 오전 7시경 서울 관악구 신림동 A스크린경마 게임장. 40여명이 담배 연기가 자욱한 홀에서 게임기 앞에 앉아 가상 경마게임에 몰두하고 있었다.

허름한 옷차림의 한 40대 남성은 “이틀 동안 60만원을 날렸다”면서도 “일어서려고 할 때 마다 큰 게 터진다”며 자리를 뜨지 못했다.

아르바이트생 김모군(23)은 “대부분 여기서 밤샘 게임을 한 손님들”이라며 “100만원 넘게 잃은 분들에게는 교통비 정도는 돌려드린다”고 귀띔했다.

최근 ‘스크린 경마’가 크게 늘고 있다. 이는 대형 스크린에서 가상 경마게임을 벌인 뒤 배당금으로 상품권을 지급하는 일종의 도박.

스크린경마는 게임당 걸 수 있는 최대 액수가 36만원에 이르는 데다 하루 500회까지 24시간 계속 게임을 할 수 있는 등 사행성이 강하지만 아무런 규제도 받지 않고 있다.

▽걸고 또 걸고…인생 ‘올인’의 유혹=스크린경마는 실제 경마를 생중계하는 장외경마장과 달리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하는 경마다. 참가자들은 약 2분간 제공되는 가상 경주마에 대한 정보를 보고 말을 골라 돈을 건다. 한 차례 경마에 최소 1포인트(50원)에서 최대 6000포인트(30만원)까지 걸 수 있다. 참가자들은 300(1만5000원)∼400포인트(2만원)를 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참가자들은 실제 경마와 같이 자신이 고른 말의 등수와 건 돈에 따라 배당을 받는다. 이들은 100포인트당 5000원짜리 상품권을 받아 외부 상품권 교환업소에서 일정액을 할인해 현금화한다. 100포인트 미만 점수는 자동으로 다음 게임 포인트로 전환된다.

스크린경마는 게임방식에 따라 한 차례 경마에 120여곳이나 베팅할 수 있고 1회 게임 진행 시간이 5분에 불과해 짧은 시간에 많은 돈을 날릴 위험성이 크다.

스크린경마는 컴퓨터 프로그램이어서 조작이 가능할 수도 있지만 실제 조작이 이뤄지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지난달 22일 오후 10시경 서울 서대문구 신촌로터리 한 게임장에서 10분에 한 번꼴로 1만원을 500원짜리 동전으로 환전하던 한 50대 남성은 “한 달 동안 막노동으로 번 돈의 절반을 이틀 만에 날렸다”면서도 “계속 잃다가 한 번 따면 기분이 좋아 또 하게 된다”고 말했다.

▽규제와 단속 필요=경마, 복권 등 사행성이 높은 업종은 ‘사행 행위 등 규제 및 처벌 특례법’에 의해 시행 횟수, 베팅 금액 등에 대한 규제를 받는다.

하지만 스크린경마는 ‘음반·비디오물 및 게임물에 관한 법률’에 따라 ‘성인용 게임’으로 분류돼 이 같은 규제를 받지 않는다. 또 지방자치단체에 등록만 하면 운영이 가능해 최근 우후죽순처럼 확산되고 있다.

지난달 23일 하루 3000만원의 수입을 올린 서울 동작구 사당동 소재 한 경마게임장을 둘러싸고 조직폭력배들이 이권 다툼을 벌이다 12명이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영상물등급위원회는 최근 업소용 게임물 등급분류 개정안을 마련하는 등 대책 강구에 착수했지만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제도 정착이 시급한 실정이다.

‘마음사랑 상담센터’ 이민식 박사(40)는 “얼마를 딸 수 있는지 예상하기 어려운 오락일수록 중독성이 강하다”면서 “건강한 사회를 위해 적절한 규제와 단속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전지원기자 podragon@donga.com

전지성기자 verso@donga.com

손택균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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