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141>卷三. 覇王의 길

  • 입력 2004년 5월 2일 18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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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 줄만 남은 法 ⑪

“자방(子房)까지 말리니 어쩔 수가 없구려. 보화와 미인을 즐기는 일은 천하를 얻은 뒤로 미루고, 선생의 말씀대로 이만 패상으로 돌아갑시다.”

그러면서 히죽 웃기까지 했다. 그때 우희(虞姬)라는 미인이 가슴 서늘하게 떠오르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패공은 비로 쓸 듯 그녀를 머릿속에서 쓸어냈다. 비정인지 둔감인지 모를 패공의 특징이지만, 또한 그에게 천하를 얻게 해준 장처(長處) 가운데 하나이기도 했다.

“전에 자영의 항복을 받을 때 그러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패공께서 사심 없고 공변됨을 보여주셔야 합니다. 궁궐 안의 모든 창고는 닫아걸게 하고 재화와 보물이 든 궁실은 엄히 봉하도록 하십시오. 또 궁궐 안에서 일하는 내관들과 궁인들을 안심시키고 전처럼 봉록을 주어 모든 제후들이 함양에 이를 때까지 궁궐을 보존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장량이 다시 그렇게 말하자 패공은 그것도 그대로 받아들였다.

패공이 함양 성안에 머무르지 않고 군사들과 더불어 패상으로 돌아가자 함양 백성들은 모두 가슴을 쓸어내리며 기뻐했다. 사람을 죽이거나 물건을 빼앗지 않는다 해도 다른 나라 군사가 성안에 머문다는 것은 결코 달가운 일이 못되었다. 그런데 절로 백리나 물러나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하지만 이제 천하를 다툴 큰 뜻을 구체적으로 굳혀가기 시작한 패공의 정치적 행보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한(漢) 원년이 되는 그해 11월 패공은 인근 여러 현(縣)에서 우러름을 받는 부로(父老)와 재덕 있는 유지(有志), 호걸들을 패상으로 불러놓고 말했다.

“여러 어르신들께서는 그동안 진나라의 가혹한 법령에 오래 시달려 오셨습니다. 진나라 조정을 비방하는 사람은 멸족의 화를 당했고, 모여서 나랏일을 걱정한 사람들은 저잣거리에서 목이 잘렸으니, 그 괴로움이 오죽 했겠습니까?

지난해 제후들이 서쪽으로 진나라를 쳐 없애려고 군사를 낼 때, 가장 먼저 관중(關中)으로 드는 사람이 관중의 왕이 되기로 서로 약조하였습니다. 이제 내가 가장 먼저 관중으로 들어왔을 뿐만 아니라 진나라의 항복까지 받아냈으니 마땅히 관중왕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장차 관중왕이 될 사람으로서 나는 먼저 세 가지 법령만 약정해 여러분의 짐을 덜어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사람을 죽인 자는 사형에 처할 것입니다. 둘째로 남을 다치게 한 자는 그 죄에 따라 벌을 줄 것이고, 셋째로 남의 물건을 훔친 자도 또한 그럴 것입니다. 이밖에 번다한 진나라의 법령을 모두 폐지하여 모든 관리와 백성들은 진나라가 천하를 짓밟기 이전처럼 편안하고 즐거운 삶을 누릴 수 있게 할 것입니다.

내가 이곳에 온 것은 여러 어르신들을 위해서 해롭고 독이 되는 것을 없애고자 함이지, 쳐들어와서 포악한 짓을 하려함이 아니니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또한 내가 군사들과 더불어 패상으로 돌아와 머무는 것도 다만 모든 제후들이 오기를 기다려 약속을 정하기 위함이니 괴이쩍게 여기실 것 없습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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