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두석
간혹 부러 찾는
수백 년 묵은 느티나무 아래
민들레 꽃씨가
앙증맞게 낙하산을 펼치고
바람 타고 나는 걸 보며
나는 얼마나 느티나무를 열망하고
민들레에 소홀하였나 생각한다
꿀벌의 겨울잠 깨우던 꽃이
연둣빛 느티나무 잎새 아래
어느 새 꽃씨로 변해 날으는
민들레의 일생을 조망하며
사람이 사는 데 과연
크고 우람한 일은 무엇이며
작고 가벼운 일은 무엇인가 찾아본다
느티나무 그늘이 짙어지기 전에
재빨리 꽃 피우고 떠나는
민들레 꽃씨의 비상과
민들레 꽃 필 때
짙은 그늘 드리우지 않는 느티나무를 보며
가벼운 미소가 무거운 고뇌와
함께 어울려 사는 모습 떠올린다
- 시집 ‘꽃에게 길을 묻는다'(문학과 지성사) 중에서
한 그루 느티나무로부터 더위에 지친 나그네는 그늘만 보고, 장롱 재목 고르는 목수는 둥치만 보고, 조경업자는 수형만 볼 것이요, 날마다 기둥을 오르내리는 개미는 평생 한 눈에 느티나무를 담을 수 없겠지요만 어떤 시인의 안목 앞에서는 느티나무의 원경과 민들레의 근경이 한꺼번에 잡히기도 하는군요.
어지간히 꽃구경, 나무구경 좋아하는 저도 수없이 바라본 느티나무요 민들레건만 저 이야길 들으며 새삼 무릎을 칩니다. 느티나무도 제 발 밑 꽃잎 상할까봐 새 옷을 더디 입는구나. 저 시인이 느티나무로부터 ‘크고 우람한 일’을 배우고, ‘민들레’로부터 ‘작고 가벼운 일’을 배울 동안 나는 그저 나비처럼 향과 색에 취했을 뿐이로구나. 이제 느티나무 곁을 지날 때마다 자꾸만 그 발 밑을 살피게 되었습니다.
반칠환 시인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