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무용단의 나초 두아토 예술감독이 허리 부상으로 내한하지 못해 그가 직접 추기로 했던 ‘프롤로그’는 생략됐다. 하지만 ‘나초 두아토의 바흐 예찬’이란 부제에 걸맞게 무용단은 바흐의 음악과 그 음악이 흔들어 깨우는 감성의 진동을 몸으로 펼쳐보였다.
특히 두아토는 강물처럼 흐르는 ‘수평적 시간’이 아니라 이성과 감성, 사랑과 미움, 삶과 죽음, 격정과 평온이 병존하는 시적(詩的) 순간에 주목했던 프랑스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의 ‘수직적 시간’이 어떻게 존재하는지 관객들 앞에 보여줬다.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연주하는 남성 첼리스트와 스스로 첼로가 된 여성무용수의 2인무는 저음으로 울리는 첼로의 선율이 일상적 시간의 흐름을 단절하고 얼마나 높고 깊은 수직적 감동의 시간을 만들어내는지 경이롭게 형상화해 냈다.
바흐의 음악에서 끌어낸 13개의 모티브로 구성된 제1부 ‘멀티플리시티’에 이어, 제2부 ‘침묵과 공(空)의 형상’은 ‘죽음’과 대면하는 바흐를 그렸다. ‘토카타’(BWV 538)의 장중한 오르간 소리에 몸을 실은 남성 7인무는 살아있는 자를 위협하며 한발 한발 다가오는 죽음의 시간을 일깨워주었다. 흰 가면을 쓴 죽음의 정령(精靈) 앞에서 자신의 사랑을 지키려 했던 바흐의 몸부림은 칸타타(BWV 21)의 눈물어린 선율과 함께 결국 좌절됐다.
무대 뒤편의 검은 장막이 벗겨지자 푸른빛이 흐르는 길고 긴 저승길이 하늘로 이어졌다. 죽음에 저항하던 바흐와 저승길에서 고통스러워하던 무용수들은 모두 죽음을 받아들이며 막이 내렸다. 문득 죽음과 삶이 마주한 ‘수직적 시간’에 자신만이 살아있음을 깨달은 관객들은 벌떡 일어나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김형찬기자 khc@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