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푸드]마이 웰빙/한복려 궁중음식연구원장

  • 입력 2004년 5월 6일 17시 08분


진정한 웰빙은 가족들이 음식을 함께 만들고 한 밥상에 둘러앉아 함께 먹는데서 나온다. 한복려 원장의 30년 믿음이다. 이종승기자 urisesang@donga.com
진정한 웰빙은 가족들이 음식을 함께 만들고 한 밥상에 둘러앉아 함께 먹는데서 나온다. 한복려 원장의 30년 믿음이다. 이종승기자 urisesang@donga.com

TV드라마 ‘대장금’의 음식 자문을 맡아 명성을 높인 궁중음식연구원 한복려 원장(57)은 최근의 ‘웰빙’ 바람이 좀 못마땅하다. 이른바 웰빙 제품들은 너무 비싸서 잘 사는 사람들만 더 잘 살기 위함인가 하는 의문이 자꾸 들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대장금이 결국 웰빙 아니냐는 질문을 받았어요. 엉겁결에 ‘네’라고 했지만 임금이 먹었던 것이 꼭 웰빙이라고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 재료에 대한 고마움

어머니 황혜성씨(84·국가중요무형문화재)와 함께 30여년간 한국 전통음식의 보존과 현대화에 힘쓴 한 원장에게 음식은 여전히 마음에 와 닿아야 하는 그 무엇이다. 우리 어머니들이 ‘오늘은 내 남편과 가족을 위해 어떤 음식을 만들까’하던 그 마음, 먹을 사람에 대한 배려와 정성이다.

그 마음은 재료를 대할 때도 보인다. 요즘 재료는 시장에 가서 돈을 주고 사는 것으로만 인식된다. 그러나 한 원장은 어머니에게서 음식을 배울 때 재료가 되는 생물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의 대화를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고 배웠다.

“요즘 엄마들은 요리할 때 생각 없이 칼로 턱하니 재료를 잘라요. 하지만 음식은 도마에서 재료를 손질하고 맛을 더하며(조미), 익힌 뒤 그릇에 담는 4가지 과정을 거치죠. 그 과정마다 재료를 생각하고 누가 먹을 것이니 어떻게 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야지요. 하지만 지금은 배운 대로 할 뿐, 과정에 대한 생각은 없는 것 같아요.”

과정을 생각하는 음식 만들기는 예전에는 제사를 지내고 손님을 치르는 등 살림을 하면서 저절로 체득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단시간에 배우려고 하다 보니 어떻게 할 때 가장 맛있게 된다는 자신만의 요령을 얻지 못한다. 그냥 하니까 하는 거다.

○ 밥이 중심이 되는 식단

한 원장은 밥 예찬론자이기도 하다. 웰빙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영양소니, 칼로리니 하는 것들이 모두 ‘밥심’이라는 한 마디에 녹아 있다고 본다. 웰빙을 잘 먹고 잘 사는 것으로 본다면 그 중심에는 밥이 있다.

“밥은 흔들리지 않아요. 밥에 어떤 것이 짝이 돼도 잘 어울려요. 짠 것이든 단 것이든, 맵든 싱겁든 상관없지요. 밥에 쑥을 넣으면 쑥 향기가 잔잔하게 배어나오는 식으로 말이지요. 먹을 때는 밥을 중심으로 부족한 것을 채우면 돼요. 국물이 있어야겠고, 단백질을 섭취하려면 고기나 생선이 오고 채소가 붙지요. 따뜻한 것이 있으니 차가운 것도 있어야 하고요.”

이처럼 옛 3첩, 5첩 반상은 잘 먹고 잘 사는 이상적인 식단이었다. 밥이라는 힘에다 종합적 영양소를 갖췄다. 갈비찜을 해도 고기에 무를 넣어 쪄내면서 음양의 화합을 이뤘다. 여기에 파란 나물도 먹고 노란색 호박도 먹으면서 갖가지 색을 담아냈다. 오행이라는 우주 만물을 한 상에서 이뤄낸 것이다.

물론 지금 집에서 옛날식 식단을 차리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파나 콩나물을 사서 집에서 일일이 흙을 털어내고 손으로 다듬을 시간도 없다. 더구나 한국 음식은 손이 많이 가기 때문에 번거롭다는 인식도 많다.

그래서 한 원장은 이제 요리가 가정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본다. 농산물 재배와 유통 과정에서 먹는 사람들을 위해 알맞은 양과 크기로 규격화하고 깨끗하게 씻어서 시간이 부족한 소비자에게 판매해야 한다. 단지 돈 때문이 아니라 다 같이 잘 살기 위해서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다 같이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웰빙이라고 한 원장은 믿기 때문이다.

○ 웰빙의 완성은 밥상

조선시대 임금의 12첩 수라상(왼쪽)과 별도의 특별한 반찬을 놓는 소원반. 이종승기자

그리고 그 웰빙은 가족이 모두 모이는 ‘밥상’에서 이뤄진다. 최근 웰빙이 개개인의 건강에 치중하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우리는 주부가 음식을 다 해놓고 사람을 불러 모으거나 상을 갖다 놓는 식이었지요.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바뀌어서 식구들을 어떻게 불러 모으느냐가 중요해졌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식탁에서 함께 음식을 끓이거나 구우면서 같이 먹는 것이 좋겠지요.”

빈대떡을 부쳐 먹을 때도 재료와 프라이팬을 놓고 식구들이 밀가루를 묻혀 가며 같이 해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수험생이 있는 집에서는 괜히 소리 날까봐 엄두도 못 내면서 밤참이라고 우유와 빵을 접시에 받쳐 갖다 준다. 그러나 그럴 필요가 없다.

한 원장은 냄새를 피우라고 말한다. 집안에 냄새가 돌면 궁금해진 수험생 아이는 밖에 나올 테고 자연히 대화가 이뤄진다. 같이 조리하는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면 긴장과 스트레스가 풀린다. 얼굴만 보는 것이 아니고 밥상을 중심으로 서로 움직이면서 부딪히게 하는 것이다.

“밥을 같이 짓고 같이 먹으면서 서로에 대한 신뢰와 느낌이 교환되고 가까워져요. 그것이 웰빙이지요.”

민동용기자 mindy@donga.com

▼한 원장이 추천한 늦봄 음식▼

차차 더워지는 늦봄이다. 나른해진 몸을 추스를 수 있는 궁중음식을 한복려 원장이 제안했다.

▽임자수탕=식물성 지방이 풍부한 깨 국물(혹은 콩 국물)과 기름기를 걷어낸 닭국물을 섞어 냉국을 만든다. 여기에 삶은 닭고기 잘게 찢은 것을 넣고 달걀지단, 버섯, 빨간 고추를 일정한 크기로 썰어 얹는다. 그 위에 쇠고기 완자 익힌 것을 얹어 낸다.

▽명태(대구)껍질쌈=1670년대 경상도 안동의 안동 장씨가 쓴 최초의 한글 요리책 ‘음식디미방’에서 유래한 요리. 명태나 대구껍질을 데쳐 헹군 뒤 굵게 채를 썬 밤과 배, 대추, 미나리를 그 안에 한 젓가락씩 넣고 돌돌 말아 겨자장이나 초간장에 찍어 먹는다.

▽두릅적=산에서 캔 두릅을 꼬치에 끼워 밀가루와 달걀옷을 입힌 뒤 기름에 지져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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