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고종시대의…’ 대한제국 ‘곳간’ 일제침략전까진 탄탄

  • 입력 2004년 5월 7일 17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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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일본의 침략이 노골화된 1904년 이전에는 대한제국이 안정 위주의 예산을 수립해 자주적 성장을 기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1897년 고종황제 즉위식이 열린 원구단. 동아일보 자료사진
저자는 일본의 침략이 노골화된 1904년 이전에는 대한제국이 안정 위주의 예산을 수립해 자주적 성장을 기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1897년 고종황제 즉위식이 열린 원구단. 동아일보 자료사진

◇고종시대의 국가재정 연구:근대적 예산제도 수립과 변천/김대준 지음/332쪽 1만5000원 태학사

얼마 전 대한제국 황실의 가족사진이 언론을 통해 일반에 공개된 적이 있다. 대다수는 무심코 지나쳤을 것이다. 무능, 부패, 정쟁으로 나라도 지키지 못한 황실을 눈여겨볼 필요가 뭐 있겠느냐 하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이런 마음에는 조선의 멸망이 일제의 침략 때문이라기보다는 대한제국 황실의 무능, 부패, 외세 의존 때문이라는 막연한 선입견이 들어 있다. 심지어 우리 역사상 최초로 근대주권국가를 선언한 대한제국조차도 빈껍데기에 지나지 않은 나라, 만민공동회를 혁파하고 독립협회를 강제로 해산시킨 수구반동의 상징으로 여겨 왔다.

김대준 전 연세대 교수(1923∼86)는 이런 분위기에서 대한제국에 눈길을 준 얼마 안 되는 학자 중 한 사람이었다. 특히 서구 선진국의 외부 충격만이 제3세계를 근대화시킬 수 있다는 근대화론이 사회과학계를 휩쓸던 1960∼70년대에 재정학 전문학자가 대한제국을 대상으로 자생적 근대화의 가능성을 논한다는 것은 화약을 들고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것으로 비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사회과학적 방법과 사료에 대한 광범위한 섭렵 및 비판적 안목을 통해 이런 우려와 경계를 씻으려 했다. 그것은 민족주의에 대한 맹목적 추종도 아니었고, 대한제국 신화를 만들려는 창작 작업도 아니었다. 오로지 과학적 방법을 통해 역사의 진실을 밝히려는 문제의식의 발로였다. 그리고 이 책은 본래 이런 노력의 결산으로 1974년 완성된 그의 박사학위 논문이었다. 필자는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연세대 도서관에서 이 논문을 발견하고는 그 성실한 사료 독해와 치밀한 논지 전개에 놀란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한국근현대농업경제사 연구의 대가인 김용섭 연세대 명예교수도 이 논문이 사장되는 것을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다행히 이태진 서울대 교수의 도움으로 그 논문이 이번에 책으로 출간됐다.

이 책에서 저자는 1896∼1910년에 걸쳐 회계법, 관제의 변천을 종합정리하고 예산 내용을 통계학적으로 분석했다. 그 결과 1904년까지는 대한제국이 안정 위주의 확대균형예산을 통해 자주적 성장을 기할 수 있었던 데 반해, 1904년 이후에는 일제의 침략으로 적자 재정으로 돌아서고 마침내 국망(國亡)을 맞기에 이르렀다는 결론을 내렸다.

올해는 러일전쟁이 일어난 지 100주년이 된다. 일본에서는 극우를 중심으로 대대적인 행사를 치르고 있고 심지어 러일전쟁을 일본을 지키기 위한 ‘자위전쟁’이라고 강변하기도 한다. 국내 일부에서는 이런 미망과 광기에 맞서 냉정한 합리와 동아시아 연대를 강조하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들은 역사의 진실을 밝히지 않는 한 사상누각일 뿐이다.

저자는 “역사적 사실이 왜곡되지 않고 사실 그대로 표시되어 이해될 때 역사적 발전을 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1970년대에 씌어진 그의 박사학위 논문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고 소중한 것은 이 때문이다.

김 태 웅 군산대 교수·한국사 kimtw@kun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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