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훈의 ‘칼의 노래’가 아니더라도 성웅 이순신을 다룬 위인전은 많다. 소설 ‘칼의 노래’가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는 이순신 장군의 순결한 삶과 인간적 고뇌를 현대적 문체로 그렸기 때문.
위인의 삶을 더욱 가깝고 친근하게 배울 수 있도록 어린이 책에서도 ‘위인전’보다는 ‘인물전’식의 접근이 많아지고 있다. 한솔교육에서 나온 ‘마주보는 인물이야기’ 시리즈 중 ‘조선의 장군 이순신’ 편은 ‘난중일기’는 물론 ‘칼의 노래’를 참고하면서 “장군 이순신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라는 생각이 어린이에게 잘 전해졌으면 한다”고 저자 이윤희(동화작가)는 밝히고 있다.
그런데 만화라…. 어린이들에게 쉽고 재미있게 다가갈 수 있는 형식임에는 틀림없다. ‘칼의 노래’가 아무리 유려한 문체와 깊이 있는 내용으로 꽉 차 있다고 해도 어린이들에게는 ‘그림의 떡’일 수 있다. 가을부터는 아예 텔레비전 대하드라마로 나온다고 하지 않는가.
만화도 역시 원작과 같이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전에서 전사하기 전 2년여의 삶과 싸움을 그린다. 전 3권 중 이번에 나온 제1권을 들여다보자.
임진왜란이 소강 상태에 접어든 정유년, 당시 3도 수군통제사였던 이순신 장군은 왜적의 술수와 간신들의 모함에 얽혀 왕에 대한 명령불복종죄를 뒤집어쓰고 한양으로 끌려가 고초를 당한 뒤 백의종군한다. 후임 원균은 조선수군을 이끌고 도원수 권율의 무리한 출격명령에 따르다가 칠천량에서 왜적에게 대패해 전멸한다.
조정은 면사첩을 내리고 장군을 3도 수군통제사로 재임명하고 장군은 12척의 배와 주린 병사들을 이끌고 한양으로 진격하려는 수만의 왜적을 맞아 싸운다. 노모의 죽음과 백성의 고통, 전쟁의 참혹함을 이겨낸 장군이 지형지물을 이용한 뛰어난 전술과 전략으로 대승을 거두는 명량해전 부분은 수십 번 읽어도 재미있다.
김훈은 “장군은 온몸과 전 생애를 바쳐 그 세상과 맞서 싸웠고 싸워서 이겼고 그 대가로 아무것도 받지 않았다”며 “어려움에 부딪쳐 슬프고 괴로운 날이 있을 때 장군의 큰마음으로 생각하라”고 권한다.
중견 만화작가 박산하는 꼼꼼하면서 힘찬 펜 놀림을 통해 원작에 충실하게 대사와 분위기를 전하고 있다. 실제로 그는 “원작을 읽어 내려가면서 느낀 경외감을 고스란히 담아 표현하고 싶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의 만화적 상상력은 다소 무겁고 어두운 장군의 고뇌를 눈앞에 생생하게 제시한다. 코믹 터치가 적은 대신 흥미를 돋우는 장치를 많이 넣었다. 스토리를 드라마 한편을 보듯 장으로 적절히 끊어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김훈은 출판사에 원작을 제공하면서 편집자들에게 현충사에서 참배할 것을 조건으로 내걸었다는 후문. 만화가에게는 자신이 수집한 자료를 제공해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도록 도왔다. 꼼꼼히 감수하던 원작자는 장군의 고향 아산의 집 같은 몇몇 장면을 보고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 똑같다”고 감탄했다. 만화가도 앉아서 건네받은 자료를 보고만 있지는 않았다는 증거이리라.
김진경기자 kjk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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