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갑자기 함곡관 뒤편에서 연기가 치솟으며 은은한 함성이 들렸다. 조금 있으려니 다시 관 오른 편 능선 쪽에서도 함성과 함께 병장기 부딪는 소리가 울렸다. 곁에 있던 계포가 밝은 얼굴로 항우를 쳐다보며 말했다.
“드디어 당양군과 포장군이 함곡관을 무사하게 돈 것 같습니다. 이제 우리도 힘을 다해 관문을 두들겨 부수어야 합니다.”
그러자 항우가 칼을 빼들고 적의 날카로운 기세에 흔들리고 있던 장졸들을 향해 소리쳤다.
“이제 때가 왔다. 우리 군사가 적의 등과 옆구리를 함께 찌르고 있으니 전면의 수비벽은 얇어질 수밖에 없다. 이때를 놓치지 말고 관문을 깨뜨려라. 먼저 관문에 오르면 장수는 공후(公侯)에 상장군으로 높일 것이요, 졸오(卒伍)라도 칠대부(七大夫))에 장수로 삼을 것이다!”
그러자 힘을 얻은 초나라 장졸들은 다시 앞을 다투어 관문으로 밀고 들었다. 이에 비해 관문을 지키는 쪽은 급속하게 무너져 갔다. 관문과 누벽 위에서 쏟아지는 바위와 통나무가 반으로 줄고 화살 비도 뜸해졌다. 그 틈에 구름사다리가 누벽에 기대 세워지고, 갈고리 달린 밧줄이 누벽 위로 날아올랐다.
오래잖아 개미처럼 누벽을 기어오른 초나라 군사들에 의해 함곡관의 관문이 열리고, 그리고 다시 초나라 군사들이 강물처럼 흘러들어갔다.
“한 놈도 살려 두지 마라! 지난 며칠 감히 천명에 맞서 수많은 우리 초나라 군사들을 해친 놈들이다. 병장기를 잡을 수 있는 관(關)안의 남자는 모두 죽여 버려라!”
피를 흠뻑 뒤집어쓴 항우가 닥치는 대로 적병을 베며 소리쳤다. 상장군이 그러하니 나머지 장졸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초나라 장졸들은 함곡관을 지키던 진나라 군민(軍民)들을 말 그대로 도륙(屠戮)냈다. 그 속에는 유방의 명을 받고 온 초나라 군사들도 섞여 있었으나 항우의 장졸들은 손길에 인정을 남기지 않았다.
해질녘이 되자 함곡관 안에는 용케 빠져 나간 장졸 약간 외에 열다섯이 넘는 진나라 남자들은 하나도 살아남지 못했다. 눈이 뒤집힌 초나라 군사들의 창칼을 피해도 생매장(@)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음이 급해진 항우는 함곡관을 깨뜨린 여세를 몰아 관중으로 군사를 내몰았다. 이제 관중에는 그들을 막을 진나라 군사가 더는 없어 항우는 열흘도 안돼 희수(戱水)를 건널 수 있었다. 한(漢) 원년(元年) 12월 초순의 일이었다.
신풍(新豊)을 지난 항우는 홍문(鴻門)이란 곳에 군사를 멈추게 하고 함양으로 밀고 들어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숨을 고르게 했다. 유방이 비워 두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한때 대진(大秦)제국의 수도였던 땅이라 함부로 다룰 수가 없었다. 거기다가 멀지않은 패상(覇上)에 진을 치고 있다는 패공 유방도 적지 아니 마음이 쓰였다.
그런데 홍문에 군사를 머물게 한 그날 밤이었다. 항우가 범증과 함께 함양 들어갈 일을 의논하고 있는데, 계포가 낯선 사람 하나를 데리고 항우의 군막으로 들어왔다. 허름한 병졸 차림을 하고 있었으나, 정말로 이름 없는 병졸 같지는 않았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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