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담사 큰스님 오현-신경림 시인의 산중대화 책으로 나와

  • 입력 2004년 5월 11일 18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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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인제군 만해마을에 있는 신경림 시인의 시비 앞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신경림 시인(왼쪽)과 오현 스님. 오현 스님은 신 시인의 시 중에서 ‘상암동의 쇠가락’ ‘묵뫼’를 좋아한다고 했고, 신 시인은 스님의 담시(譚詩) 중 ‘절간 이야기 31’에 감동 받았다고 했다.-인제=서정보기자
강원 인제군 만해마을에 있는 신경림 시인의 시비 앞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신경림 시인(왼쪽)과 오현 스님. 오현 스님은 신 시인의 시 중에서 ‘상암동의 쇠가락’ ‘묵뫼’를 좋아한다고 했고, 신 시인은 스님의 담시(譚詩) 중 ‘절간 이야기 31’에 감동 받았다고 했다.-인제=서정보기자
스님과 시인의 특별한 만남.

강원 설악산 백담사 회주(會主)인 오현(五鉉·72) 스님과 신경림(申庚林·69) 시인. 두 사람은 지난해 6월부터 올 4월까지 백담사에서 10여 차례 만나 사랑과 욕망을 비롯한 인간 내면의 소리부터 전쟁, 환경, 통일 등 사회 전반의 문제까지 폭넓게 대화를 나눴다. 승속(僧俗)을 넘나드는 이들의 대화는 ‘열흘간의 만남’(아름다운인연)이란 책으로 최근 나왔다. 이들은 10일 백담사 인근 만해마을(강원 인제군 북면 용대리)에서 출간기념 행사를 가졌다.

신경림 시인이 백담사가 주관하는 제1회 만해문학상(1974년)을 수상했다는 것 외에 두 사람은 개인적 인연이 없다. 이들의 만남은 출판사가 기획한 것이었다. 하지만 “스님을 통해 불교를 제대로 알고 싶었다”는 시인과 “일흔이 넘어 대중 앞에 나서면 망신당할 일 밖에 없는데도 시인과 인연이 깊다고 생각해 순순히 응했다”는 스님은 친구처럼 가까워졌다.

두 사람은 대화 전 한 가지를 약속했다. 독자를 의식해 마음에 없는 소리나 쓸데없는 자랑, 상대를 추켜세우는 일은 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책에는 평소 듣기 어려웠던 두 사람의 삶의 역정이 펼쳐졌다. 스님은 공양주 보살의 딸과 결혼할 뻔했던 이야기, 문둥병 부부를 쫓아다닌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시인은 어릴 적부터 미워한 아버지가 중풍에 걸렸을 때 7년간 보살핀 애증 섞인 이야기를 들려줬다.

두 사람은 사랑이나 욕망에 대해서는 얼버무리지 않았다. 한쪽은 속(俗)의 입장에서 복잡하고 다양하게, 다른 한쪽은 선(禪)의 입장에서 단순하고 명쾌하게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사랑이란 특별한 대상에게서 느끼는 특별한 감정입니다. 속인(俗人)은 무엇에 집착하고 누구를 사랑할 때 삶이 활기차게 되지요. 그 때 자기 능력이 크게 발휘됩니다.” (시인)

“영원한 사랑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마치 허공에 핀 공화(空華)처럼 실체가 없습니다. 허무에 집착하면 그 때는 좋을지 모르지만 나중에 힘듭니다. 특별한 사람에 대한 사랑보단 대자대비(大慈大悲)를 배우라고 합니다.” (스님)

“불교에선 욕망을 끊고 집착을 버리라고 하는데 욕망이 없으면 어떻게 시를 쓸 수 있겠습니까. 뭔가 부족하고 아쉬우니까 시를 쓰는 겁니다. 욕망을 극복하면 시는 필요 없습니다.” (시인)

“욕망은 버리거나 버리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불교는 욕망의 반대편을 보라고 합니다. 탐욕과 본능은 자꾸 무엇을 하라고 하는데 그것을 자제하라는 것이고, 거기서 새로운 삶의 모습을 찾아내라는 것이지요.” (스님)

상대에 대한 평가는 어떨까. 시인은 “괴팍한 스님인줄만 알았는데 세상 보는 눈이 정확하고 날카롭다”고 했다. 스님이 “시골장터에서 만날 수 있는 촌로 같은 푸근한 느낌이 든다”고 말하자, 시인은 “나도 재즈 등에 일가견 있는 세련됨을 가졌는데…”라고 받으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오현 스님은 “‘시가 선객(禪客)을 만나면 금화(錦花)를 더한 것 같고 선이 시인을 만나면 옥도(玉刀)를 다듬는다’란 말이 있어요. 백담사 계곡의 청정한 물소리처럼 어지러운 세상에 우리의 대화가 조그만 위안이 됐으면 합니다”라며 마무리 지었다.

인제=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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