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하동에 전해 내려오는 ‘가마고개 설화’를 모티브로 삼은 이 연극은 17세기 조선과 21세기 한국의 현실을 오가며 위정자들의 파행적 행태를 풍자한다. 2004년 서울연극제 공식참가작.
‘가마고개 설화’는 당파를 달리하는 두 명문 사대가 집안의 가마가 좁은 고갯길에서 맞닥뜨린 데서 시작된다. 두 가마에는 혼례를 막 치른 신부들이 타고 있었다. 하지만 가문 대대로 원수였던 두 집안은 먼저 길을 비켜주는 쪽이 무릎을 꿇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한 치의 양보 없이 대치한다.
이 소식을 들은 두 집안의 문파 사람들은 아예 고갯길로 찾아와 끝까지 버티라고 응원을 보낸다. 몇 달간 첨예하게 대치된 상태에서 지쳐버린 두 가문은 결국 왔던 길로 되돌아가기로 암묵적 합의에 이르고, 신부에게 가문을 위한 희생을 강요한다. 두 집안은 신부들을 절벽 밑으로 떨어뜨린 뒤 빈 가마를 들고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얼마 뒤 거대한 열녀비가 세워진다. 이 연극에서 죽음을 맞는 신부는 집단 이기주의의 명분과 허위의식 때문에 힘없이 희생되는 개인을 상징한다.
200년이 지난 현재를 배경으로 같은 가마고개에 국회의원 두 명이 등장한다. 두 의원은 노루 사냥을 마친 뒤 잡은 동물이 ‘노루’니 ‘고라니’니 하며 지루한 논쟁을 벌인다. 이들은 시간을 거슬러올라 가마고개 설화에 등장하는 두 신부의 시아버지로 변신한다. 또 숙종시대 서인과 남인의 영수로 각각 변신해 왕의 장례 문제를 놓고 논쟁하다가 돌이킬 수 없는 원수지간이 된다.
작품 속에서 남자배우 한명구 이창직씨(서울시립극단), 여배우 이지하(극단 백수광부) 황정라씨(극단 인혁)가 각각 1인3역씩 맡아 펼치는 연기 대결이 볼 만하다. 평일 오후 7시반, 토 오후 4시반 7시반, 일 오후 4시반. 1만2000∼2만원. 02-3676-0878
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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