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260여년 전 서울의 풍경은 ‘봄비 맞은 버드나무 새순’처럼 싱그럽고, ‘중천에 떠있는 햇살’만큼 눈부셨다. 1740년 전후 겸재 정선(謙齋 鄭q·1676∼1759)이 화폭에 담은 한양의 풍경을 오늘의 모습과 비교한 ‘겸재의 한양진경’(동아일보사)은 서울이 얼마나 아름다운 도시인지를 보여준다.
“세계에서 수도 근처의 풍경을 이처럼 풍성하고 세밀하게 그린 경우가 또 있을까요. 그만큼 서울의 풍경이 아름답다는 증거입니다.”
겸재의 그림을 통해 600년 고도(古都)의 옛 풍경 안내에 나선 최완수 간송미술관 연구실장(64)은 겸재가 활약한 전후시기를 진경시대(眞景時代·1675∼1800)라 부른다.
“이 시대는 퇴계와 율곡이 세운 조선성리학이 주자학을 대신해 국가적 이념이 되면서 조선이 세계문화의 중심이라는 자부심에 가득 찼던 시기입니다. 조선 문화에 대한 이러한 자부심은 조선 국토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인식으로 발전합니다. 겸재의 그림은 그런 인식의 최고 결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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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 최고의 풍광을 자랑했던 청풍계(淸風溪·오늘날 청운동 일대)의 수려한 풍광, 안개 낀 날 인왕산에서 남산을 내려다 본 종로와 신문로 일대의 웅장한 경치, 오늘날 청와대 자리에 있었던 대은암과 독락정의 고고한 자태, 압구정과 석촌호수 지역의 한가롭고 운치 가득한 풍경, 올림픽대로가 건설되면서 섬에서 육지 위로 올라와 신비로운 자태를 잃어버린 광주바위의 옛 모습….
그러나 ‘겸재의 한양진경’은 오늘날 그 자리에 가 선다고 해도 언뜻 그 옛 모습을 떠올리기 힘든 이런 풍경에 대한 기록만 담은 것이 아니다. 겸재가 교유했던 조선 최고 지식인들의 세계관과 당대 풍속에 대한 안내서이기도 하다.
간송미술관은 16∼30일 책 속에 소개된 한양진경 40여점을 포함해 겸재의 그림 100여점을 전시하는 ‘대(大)겸재전’을 개최한다. 주말마다 ‘오욕의 도시’를 빠져나가느라 교통체증에 시달리는 서울시민들은 먼저 고개를 들어 주변을 볼 일이다. 그곳에 바로 겸재의 그림이 숨어있나니….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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