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마를 할 때부터 소년은 소 떼를 끌고 초원에서 초원으로 돌아다녔다. 아프리카 케냐 북부 사바나지역에 있는 마사이족인 아리알 부족 소년 레마솔라이. 소년의 부족이 사는 건조한 초원은 나이로비에서도 멀리 떨어진 오지였다. 10대 후반, 소년은 나이로비도 아닌 ‘미국’으로 떠났다. 소년의 어머니는 아들이 아침에 소 떼를 몰고 나가는 시간에 비행기를 타서 이튿날 같은 시간까지 하늘에 떠 있다는 사실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얘야, 나는 믿을 수가 없구나. 하지만 너는 믿는다. 네가 하는 말도.”
케냐 사회에서도 맨 밑바닥 계층 출신인 저자 레마솔라이. 그는 풀을 찾아 소 떼를 몰고 다니는 전통적인 생활이나, 기껏해야 도시로 나온 뒤 식당에서 손님들을 위해 새총으로 원숭이를 쫓아주고 푼돈을 버는 마사이족의 삶을 벗어나기 위해 학교에서 공부를 했고 ‘먼 곳’을 동경했다.
이 책은 굳은 의지로 아프리카 사바나에서 하버드대까지 스스로 길을 개척한 마사이족 청년 레마솔라이가 자신의 목소리로 쓴 성장기다.
저자는 난생 처음 사자와 맞닥뜨렸던 경험에서부터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다. 고향 어른들에게서 배웠던 허허벌판에서 살아남는 법, 먹을 것 마실 것 없이 하루 종일 버티며 소 콧잔등 위의 물기를 핥아 갈증을 이기는 법 등이야말로 그가 빌딩 숲으로 둘러싸인 미국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해 준 기초체력이었기 때문이다.
들판에서 소 떼가 사자를 만나면 일제히 오줌을 누어 마치 소나기가 내리는 것 같은 소리를 낸다는 얘기나, ‘마사이의 전사는 여자가 주는 것을 받아먹지 않는다’는 부족의 전통을 지키느라 고향을 떠나 미국에 도착할 때까지 꼬박 나흘을 굶는 레마솔라이의 모습 등을 통해 독자들은 낯선 아프리카 문화의 한복판으로 들어서게 된다.
레마솔라이는 자신의 삶을 통해 마사이족의 문화를 섬세하게 표현해낸다. 마사이족은 가족이 아니라 마을을 기본단위로 움직이기 때문에 아무도 굶주리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공정한 사회다. 어른들은 부족 내 모든 아이들의 부모로서 그들을 돌보고 가르친다.
개구쟁이였던 레마솔라이는 어느 날 마을의 전사를 조롱했다가 그에게 호되게 매질을 당한다. 어머니는 아들이 회초리로 사정없이 맞는 소리를 듣고도 내다보지 않았다.
‘그것은 버릇을 가르치는 일이었고, 우리 문화의 일부였다.’
지금도 방학 때면 고향으로 달려가 마사이 전통복장을 입고 소 떼를 몰고 초원으로 나가는 레마솔라이. 그는 여러 비영리단체와 함께 일하면서 100여명의 유목민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줬고, 케냐 농촌공동체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해 10여개 마을에 수돗물을 끌어댔다. 이후 케냐 정부에서 주는 ‘위대한 전사 훈장’의 최연소 수상자가 됐다.
정은령기자 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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