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작업실은 서울 종로의 한 비디오 가게 지하에 있다. 지지대가 헐거워지는 바람에 무너져 내렸다는 싱크대 옆에는 검은 비닐봉투에 모래가 가득 담겨 있다. 이번 개인전에 선보이는 사진 속 조각 작품들이 1주일 만에 말라버려 다시 원 상태로 돌아간 것이라고 한다. 작업실 중앙의 카메라들과 왼편의 암실이 없다면 사진작가의 작업실이란 사실을 알지 못할 정도로 실내가 모래로 어수선했다.
“재료비가 안 들어 좋겠다”고 농을 던지니, “입자와 색깔이 고운 모래를 찾느라 전국을 헤맨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번 전시가 사진전이라고는 하지만, 작가는 사진보다 모래조각 빚는 데 더 많은 시간과 공을 들였다. 다시 모래알로 돌아갈 작품들을 빚는 헛수고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죽음이나 늙음에 대한 공포를 이미지로 표현하고 싶었지요. 사람들은 체력이 떨어지거나 기억력이 쇠퇴하는 데서 그런 공포를 구체적으로 느낀다고 생각해요. 저 자신 나이가 들수록 디테일한 묘사력이 떨어지는 것을 느끼면서 기억이 뇌 속에 저장되는 게 아니라 소멸하는 것이 아닐까 싶더군요. 그 와중에 모래라는 재료를 떠올리게 됐어요.”
동국대 인도철학과를 졸업한 뒤 다시 서울예대 사진과를 다닌 이력답게 작가의 관심은 ‘철학의 시각화’다. 2000년 첫 개인전에서는 형형색색의 박제 나비들을 꽁보리밥 도시락, 비닐에 담긴 젓갈, 달걀노른자, 고구마 맛탕 같은 색깔 있는 음식 위에 얹어 사진을 찍었다. 이듬해 개인전에서는 유리병 파편들을 소시지, 두부, 애호박에 예쁘게 찔러 사진을 찍은 다양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모두 일상성, 아름다움, 낯익음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담았으면서도 뛰어난 색채감각으로 호평 받은 바 있다. 이번 모래 사진전에는 20여점이 나온다. 19일∼6월1일 서울 인사동 덕원갤러리. 02-723-7771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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