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드’를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신화 속 전사 아킬레우스와 이 금발의 섹시 스타를 2시간43분 동안 매력적으로 결합시켰다.
● 브래트 피트의, 브래드 피트를 위한 영화
피트와 서사 블록버스터 ‘트로이’의 만남은 다소 의외로 여겨진다. 그는 섹시 아이콘으로 인기를 누리면서도 ‘12 몽키스’ ‘스내치’ 등 캐릭터는 강하지만 대중적이지 않은 작품들을 선택해왔다. 피트의 변신은 그의 마니아들에게는 개운치 않을 수 있지만 ‘퍼펙트 스톰’의 볼프강 페터슨 감독은 이 영화에서 피트의 매력을 제대로 분출시켰다.
영화는 기원전 3200년경 트로이 왕자 파리스(올란도 블룸)가 스파르타 왕비 헬레나(다이안 크루거)를 데리고 달아나면서 시작된다. 이에 미케네 왕 아가멤논(브라이언 콕스)은 연합군을 결성해 트로이를 공격한다. 그리스 최고의 전사인 아킬레우스(브래드 피트)는 트로이에 가면 죽는다는 예언에도 불구하고 불멸의 영웅으로 이름을 남기기 위해 전쟁터로 떠난다.
이 작품은 파란만장한 트로이 전쟁을 빠른 속도로 압축했다. 트로이 전쟁의 도화선이 된 불화의 여신 에리스의 황금사과 등 신화가 빠진 공간을 권력, 사랑, 명예에 대한 인간적 정치적 해석으로 채워 넣었다.
2억 달러(약 2400억 원)를 쏟아 부은 이 블록버스터의 하이라이트는 브래드 피트의 활약상. 그는 금발을 휘날리며 서부극 총잡이의 1대1 결투를 연상시키는 트로이의 영웅 헥토르(에릭 바나)와의 대결에서 남성미를 한껏 드러낸다. 또 트로이 여사제 브리세이스(로즈 번)와의 운명적 사랑, 이를 통한 인간적 고뇌와 진정한 영웅의 길을 보여준다. 페터슨 감독은 아킬레우스의 비장한 최후를 클로즈업해 관객의 눈물까지 유도한다.
● 남성들의 영화
‘트로이’는 남성의 세계에 많은 애정을 드러낸다. 트로이 왕 프리아모스(고결함, 관용)와 그의 두 아들 파리스(사랑) 헥토르(명예, 조국애), 미케네 왕 아가멤논(권력), 이타카 왕 오디세우스(지혜) 등 ‘트로이’에 나오는 남성들은 페터슨 감독이 부여한 성격대로 행동하는 단순한 캐릭터다. 승리와 명예만이 최고 선(善)이었던 아킬레우스 정도가 사랑과 전쟁의 고통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복합적 캐릭터일 뿐이다.
이처럼 영화는 블록버스터의 쉬운 화법을 선택했다. 캐릭터를 단순화시켜 명확하게 메시지를 전달한다. 헥토르, 프리아모스(피터 오툴), 아가멤논과 아킬레스의 1대1 만남과 대립은 전쟁, 사랑, 죽음에 직면한 인간의 내면세계를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점에서 화면만 보여주고 드라마는 죽어 있는 ‘블록버스터의 함정’에서 조금은 벗어나 있다. 상대적으로 헬레나와 브리세이스 등 여성 캐릭터들은 축소돼 버렸다.
영화의 비주얼은 ‘반지의 제왕’ 시리즈 보다 훨씬 더 사실적인 스펙터클을 보여준다. 특히 트로이를 둘러싼 대규모 전투와 트로이의 목마, 트로이 성의 함락 장면이 매력적이다. 21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 가.
김갑식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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