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슬로 라이프’ 뉴질랜드 웰빙 체험

  • 입력 2004년 5월 20일 20시 02분


한국 사람이 가장 동경하는 나라 가운데 하나인 뉴질랜드. 그곳에서 만난 베일리 가족은 노동과 휴식이 잘 어우러진 건강한 삶을 살고 있었다.사진=크리스 파커(뉴질랜드 사진작가)
한국 사람이 가장 동경하는 나라 가운데 하나인 뉴질랜드. 그곳에서 만난 베일리 가족은 노동과 휴식이 잘 어우러진 건강한 삶을 살고 있었다.사진=크리스 파커(뉴질랜드 사진작가)

《뉴랜드 북섬의 항구도시 타우랑가에서 테푸케로 가는 편도 1차로 도로는 한적하다. 초록 일색인 들판을 배경으로 간간이 일찍 단풍이 든 나무들과 집들이 드문드문 박혀 있다.

농가의 일상을 체험하기 위해 가는 길. 뉴질랜드는 한국 사람들이 가장 동경하는 국가 가운데 하나다. 그곳의 평범한 사람들은 어떻게 하루를 보내는지, 건강한 삶에 대한 그들의 생각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 농장의 하루

나기로 한 사람이 키위 농사를 짓는 크리스와 아만다 베일리 부부라는 것 외에 다른 정보는 전혀 없었다. 그들이 사는 테푸케는 ‘키위 산업의 수도’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곳. 최대도시 오클랜드에서 차로 5시간쯤 떨어진 시골 마을이다.

달리는 차안에서 긴장감이 조금씩 고개를 들었다. 단순히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을 만나야 하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평생 도시에서 살아 온 내가 몸으로 하는 농사일을 잘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더 컸다. 하늘도 비를 머금고 잔뜩 찌푸렸다.

차는 대로에서 조금 들어간 농가 앞에 기자를 내려놓고 휑하니 떠나 버렸다. 크리스의 첫 인상은 선해 보였다. 올해 39세인 그는 아버지 론, 동생 스티븐과 함께 농사를 짓는다고 했다.

농장으로 가자며 큼직한 고무장화를 하나 건넨다. 구두를 벗고 그가 하는 대로 바짓단을 접어 양말에 넣은 후 장화를 신었다. 전장으로 나가는 느낌이다.

털털거리는 트랙터의 짐칸에 실려 키위 밭으로 향했다. 수십 년간 안락한 의자에 길들여진 육체는 낯선 처우에 몹시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키위 나무는 포도나무와 비슷했다. 남자 큰 키 정도의 높이에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잎이 무성하고 키위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키위를 따는 게 오늘 주어진 일이다.

수확용 자루를 앞에 맸다. 키위를 따서 한 손에 두 개씩 4개가 되면 자루에 넣는다. 자루가 키위로 꽉 차면 트랙터에 실린 나무 상자에 쏟아 붓는 작업이 반복됐다.

어려울 게 없어 보였지만 자루가 차면서 목에, 어깨에, 허리에 엄청난 무게가 전해졌다. 30분도 안 됐는데 땀이 흥건했고 동작은 점점 느려졌다. 고개를 돌려서 보니 크리스는 휘파람까지 불고 있다. ‘살아 온 삶의 차이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도 지극히 안온했던 삶에 대한 반성이 밀려 왔다.

베일리 가족은 400여 마리의 젖소를 기른다. 론(왼쪽)과 아들(크리스)가 젖소들에게 풀을 뜯기고 있다. 사진=크리스 파커(뉴질랜드 사진작가)

비가 쏟아지면서 작업은 중단됐다. 키위가 비를 맞으면 상처가 나기 쉽고 보관에도 문제가 있어서 따지 않는다고 한다. 안도 반, 실망 반….

그날 저녁 크리스 부부와 함께 한 키위 농장주가 마련한 저녁에 초대됐다. 차안에서 크리스에게 테푸케의 인구를 물었더니 1500가구쯤 된다고 했다. “서울에서는 우리 아파트 단지에만 1000가구 쯤 산다”고 말해 줬더니 차가 휘청거릴 정도의 반응이 왔다. 부부는 이날 저녁 “홍의 아파트에는 1000가구가 산다”는 얘기를 몇 번이나 입에 올렸다.

○ 그들의 삶

뉴질랜드는 농업을 포함한 1차 산업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특히 테 푸케 지역에 초기에 정착한 이주민들은 고집스럽게 땅을 개간하고 농사를 지어왔다. 농장주들이 도시민보다 더욱 부유한 경우가 많고 존경 어린 시선을 받고 있다. 한국 농촌의 현실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크리스의 가족은 1890년대 영국에서 뉴질랜드로 이주한 후 4대째 농사를 짓고 있다. 크리스는 “20대 중반에 몇 년 동안 영국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도시에서 일을 해봤고 좋은 경험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와 동생과 함께 농사짓는 생활이 내게는 천직”이라고 말했다. 4살난 아들 조나단에게도 농사를 시키겠느냐고 묻자 “원한다면”이라고 짧게 대답하고 웃는다.

그의 아버지 론은 올해 63세. 체구는 자그마했지만 손가락 뼈마디가 어색하다 싶을 정도로 굵다. 오랜 시간 흙과 함께 살아온 그의 삶이 묻어났다.

농촌생활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크리스 베일리의 아내 아만다와 한 살된 딸 아델.

베일리 가족은 60만평의 땅에 키위와 아보카도, 400여 마리의 젖소를 키우고 있는 부농이다. 처음부터 이렇게 규모가 컸던 것은 아니다. 론은 “이익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계속해서 땅을 사들였다. 땅이 농부에겐 최고의 재산”이라고 설명했다.

농장은 마치 작은 공장처럼 운영되고 있었다. 평소에는 10여명이 일을 하다가 수확할 때는 임시로 20여명을 더 고용한다. 부자간에 역할 분담이 확실해서 론이 최고경영자(CEO), 아들인 크리스와 스티븐은 각각 농장과 목장의 생산 및 품질 관리자다.

투자 결정과 비전 제시는 CEO인 론의 몫. 농장을 안내하면서 론은 “아보카도는 수익률이 들쭉날쭉하기 때문에 키위 농사를 함께 짓는다. 일종의 위기관리 시스템”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아직 높이가 1m도 채 안 되는 아보카도 묘목 밭을 보여주며 “이곳이 5년 후, 10년 후에는 농장의 중추 생산 시설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날씨 말고는 고민이 없어보였다. “도시의 삶이 부러울 때는 없느냐”고 크리스에게 묻자 “도시에서 월급쟁이로 사는 친구들이 연간 휴가를 모아 몇 주씩 연속으로 쉬는 것을 볼 때”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 행복한 삶의 조건

1918년 처음 키위 재배를 시작한 테 푸케 지역은 뉴질랜드 키위 산업의 중심지다. 6개월까지 보관 가능한 저장 기술이 개발되면서 70년대에는 많은 재배 농가가 백만장자가 되기도 했다. 사진제공 제스프리

다음날은 계속 비가 내렸다. 키위 따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풋내기 인부는 하루를 그대로 공치게 생겼다. 론과 셜리, 크리스와 아만다 부부와 함께 점심 식사를 했다.

“온 가족이 늘 이렇게 함께 모여서 식사를 하느냐”고 묻자 론은 “오늘은 예외다. 크리스도 가정이 있는데 왜 우리랑 먹겠느냐”고 답한다. 어제 “아들과 왜 따로 사느냐”고 물었을 때 들었던 답변과 비슷한 뉘앙스였다. 매일 같은 곳에서 함께 일하고 긴밀하게 상의하면서도 사적인 공간은 인정해줘야 한다는 뜻일까.

식탁은 뜻밖에 검소했다. 야채수프와 빵, 약간의 베이컨, 아보카도 열매뿐. 식사를 마친 뒤 가족들은 조용히 각자 자신이 사용한 접시와 식사도구를 치웠다.

론의 집 거실에는 그가 직접 잡은 송어 두 마리가 박제돼 있다. 시간 날 때마다 가족이 함께 낚시를 하고 해외로 여행을 다닌다고 했다. 론 부부는 다음달 한달 일정으로 아일랜드와 독일 등을 도는 여행 준비로 들떠 있다. 탁자 위에는 아일랜드를 소개한 책자가 놓여 있었다.

잠시 쉬는 동안 전쟁 같은 서울의 하루하루가 떠오른다. 교통 체증 때문에 한 시간씩 걸리는 출근길, 흙 한 번 만져볼 수 없는 빌딩 숲, 진리처럼 섬겨온 경쟁과 효율성의 논리….

나는 잘 살고 있는가, 아니 도대체 잘 사는 것은 무엇인가. 베일리 가족과 이틀을 보낸 후 자유와 조화, 겸손 같은 단어가 행복을 이루는 조건이라는 생각을 했다. 한국에선 지상낙원으로 꼽히는 이곳 뉴질랜드에서 과연 나는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어떤 이유인지 아직 확신이 서지 않았다.

뉴질랜드에 온 지 사흘째 되는 밤. 사방을 둘러보니 불빛 하나 없는 칠흑 같은 어둠이 장벽처럼 다가선다. 처음 비행기를 내렸을 때 기자를 사로잡았던 적막함은 어느새 답답함 비슷한 감정으로 바뀌고 있었다. 아, 이런 간사함이라니.

테푸케(뉴질랜드)=홍석민기자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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