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청와대 옆 이발관 운영 김재호씨

  • 입력 2004년 5월 20일 20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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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승기자 urisesang@donga.com
이종승기자 urisesang@donga.com
《이 동네에는 아주 오래된 이발소가 하나 있습니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아무도 정확하게 기억하는 사람은 없죠.

어른들 말씀으로는 약 60년도 더 됐다는데 모두들

“내가 어렸을 때도 있었다”고만 합니다. 가게는 무척이나 허름합니다. 꼭 시골 창고처럼 생긴 것이 크기도 4평정도 밖에는

안 됩니다. 정확한 주소는 서울 종로구 통인동 36의 4,

가게 이름은 ‘형제이발관’이지만 모두들 ‘효자동 이발소’라고 부릅니다. 근처에 청와대가 있어서 이 근처 동은 모두

통칭 ‘효자동’입니다. 물론 관할 동사무소도 효자동사무소죠.

아저씨는 영화 ‘효자동 이발사’와는 아무 관계가 없지만

영화때문에 유명해 진 것도 사실입니다.》

○ 토박이들의 ‘동네 사랑방’

아저씨 이름은 김자, 재자, 호자입니다. 연세는 50이시고요, 면도와 머리를 감겨주시는 아주머니 한 분과 함께 일하시죠. 아저씨는 노태우 대통령 시절에 이곳에 오셨습니다.

원래 다른 곳에서 일하셨는데 자꾸만 이발소가 이상한 아가씨들이 나오는 곳으로 변해가는 것이 싫어서 모범업소인 이곳으로 옮기셨답니다.

이 이발소는, 아저씨 말씀으로는 ‘70년대 초 처음 이발을 배우던 곳하고 똑 같다’고 합니다.

가게 정면에는 빛바랜 태극기가 걸려있죠.

쓰러질 것 같은 의자, 구식 타일이 깔린 세면대, 골동품 가게에나 있을 것 같은 드라이어….

지금은 아니지만 창문도 아저씨가 처음 오셨을 때는 나무창문이었다고 합니다. 삐꺼덕거리는….

아저씨는 그런 모습이 너무 좋답니다. 그래서 창문을 빼고는 손도 안 댔대요.

그래도 손님은 항상 끊이지 않습니다. 동네가 원래 토박이가 많은 데다 설령 이사를 가도 아저씨 손맛을 잊지 못해 머리는 여기로 와서 깎거든요.

아저씨의 가게는 동네 사랑방입니다. 대통령 집과 너무 가깝다보니 대화도 대부분 정치나 대통령 할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들이죠.

오늘도 마침 텔레비전에서 대통령 탄핵이라는 재미없는 내용이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아저씨와 손님들은 연방 혀만 끌끌 찹니다. 때로는 욕도 하고….

“다 똑같은 놈들이야”라고 하시는데 뭐가 똑같은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사진 아래)청와대 인근에 있어 일명 ‘효자동 이발소’라고 불리는 형제 이발관 모습. 청와대 직원들의 단골 이발소이기도 하다.이종승기자 urisesang@donga.com

○ 대통령 전속이발사 제의 거절

요새 ‘효자동 이발사’라는 영화가 나왔답니다. 아저씨가 주인공인 줄 알고 보여 달라고 했더니 ‘나도 아직 안 봤어’라고만 하십니다.

작년에 진짜로 그 영화를 찍는 사람들이 아저씨를 찾아온 적이 있습니다. 송강호라는 배우가 아저씨에게 이발하고 면도하는 것 좀 가르쳐달라고요. 하지만 아저씨는 바쁘다고 거절했답니다. 아저씨는 진짜 엄청 바쁘거든요.

영화에서는 옛날 대통령들의 머리를 깎은 이발사 아저씨가 나오지만 아저씨가 만난 가장 높은 사람은 얼마 전에 국회의원이 된 문희상이라는 사람이래요.

작년에 몇 번 왔었는데 두어 번은 손님이 많아 그냥 돌아갔고 두어 번 머리를 깎아 주었다네요.

아저씨는 “세상 좋아진 거지. 대통령비서실장이 기다리다 가고…” 하시면서 웃으시고는 합니다. 그래도 그 사람은 이발료를 써있는 것보다 좀 더 많이 주고 갔답니다.

아저씨는 실제로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에 들어왔을 때 대통령 전속 이발사로 오라고 제의를 받았답니다.

청와대 직원들이 자주 오다보니 소문이 나서 그랬나봅니다. 하지만 아저씨는 깨끗이 거절하셨대요. 지금의 가게를 버릴 수가 없어서랍니다.

아저씨가 그러는데 김대중 할아버지 때는 전속 이발사가 두 번 바뀌었대요.

첫 번째 아저씨는 처음 머리를 깎고 나자 대통령 할아버지가 거울을 보며 손수 빗질을 다시 했대요. 그 뒤로 바로 두 번째 아저씨로 바뀌었다네요.

두 번째 아저씨는 무슨 청첩장을 돌리다가 문제가 돼 또 나갔고요. 아저씨는 “떨어져 있는 장관보다 매일 만나는 이발사가 대통령하고 더 친한 거지 뭐”라고 하십니다.

○ "영화 ‘효자동 이발사’와 달라요"

아저씨 말씀으로는 역대 대통령 중에 박정희 대통령 머리가 아마 가장 다루기 어려웠을 거라고 합니다. 군인 이미지에 아주 단정하고 깔끔한 모습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이죠.

하지만 마음고생은 전두환 대통령의 전속 이발사가 제일 심했을 거라고 해요. 대통령 7년 하는 동안 머리는 자꾸 빠졌을 테고, 머리를 깎거나 다듬으면서 ‘머리가 자꾸 빠져…’하는 고민을 한두 번은 이발사에게 말했을 거라는 거죠.

그러니 그 이발사 아저씨 속이 얼마나 탔겠느냐는 거죠. 꼭 자기가 잘못해서 그런 것 같잖아요.

가게 문도 청와대 쪽을 향하면 안 된다고 옆으로 내던 시절이었다는데요.

아저씨는 머리를 보면 대개의 사람 성격도 보인다고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 머리는 숱이 많고 위로 뻗치는 스타일이래요. 그래서 매일 뭘 발라서 죽여야 한다네요. 뭘 죽인다는 건지….

그러자 손님 머리를 감기고 있던 아주머니는 “성격하고 똑 같아”라고 한마디 하십니다.

영화 속에서 효자동 이발사는 현대사의 한 증인처럼 나온대요. 하지만 아저씨나 이 동네는 영화하고는 많이 달라요.

옛날에 시위가 많았을 때도 동네는 조용했대요. 가게도 별로 없는 주거지역인 데다 나이 드신 분이 더 많거든요.

지금도 이 동네는 서울 한복판인데도 꼭 시골 동네 같아요. 한옥도 많고, 길도 좁고…시장도 있거든요.

마침 텔레비전에서 그 재미없는 프로가 끝났어요.

아저씨는 텔레비전을 끄면서 또 그래요. “다 똑같아. 믿을 놈 없어”라고요.

그리고 한 마디 더 하셨죠. “난 정말 DJ도 아들들이 그럴 줄 몰랐고 노무현도 돼지 저금통만으로 선거한 줄 알았어”라고요.

DJ는 또 누구래요? 노무현 대통령도 돼지 저금통에 저금을 하나보죠? 나처럼….

이진구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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