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초 진념 당시 경제 부총리를 필두로 경제계는 “서울 강남지역 아파트 값 급등 원인은 유명 학원가 및 학군을 찾아 학생들이 강남으로 이동한 탓”이라며 부동산 가격 급등의 원인을 교육정책에 돌렸다. 이에 대해 교육계에서는 “교육에 대한 무지의 소치”라며 “경제나 잘 챙기라”고 반박했다.
미국 하버드대 법학대학원 석좌교수인 어머니와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MBA 출신의 딸이 함께 쓴 이 책은 얼핏 보아 경제계의 손을 먼저 들어준다.
이들 모녀는 미국 내에서 급증하는 소비자 파산 신청자들을 심층 면접한 결과, 중산층 몰락의 원인이 ‘과소비’나 ‘도덕적 해이’가 아니라 주택가격의 급등에 있으며 이는 궁극적으로 미국의 잘못된 교육정책에 있다는 결론에 이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몇 가지 익숙한 오해에 도전한다.
첫째, 과도한 교육열과 이로 인한 부동산가격 폭등이 한국적 현상만은 아니란 점이다. 한국보다 땅덩어리가 훨씬 넓은 미국에서도 주택가격은 폭등했다. 공교육에 대한 불신과 각종 범죄에 대한 불안으로 좋은 학군의 주택에 대한 수요가 폭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신용불량자가 급증한 이유가 분수 넘치는 사치품 소비나 도덕불감증 때문이 아니라는 점이다. 저자들은 소비자 파산 신청을 한 2000여 가정을 면담한 결과 최악의 재정난에 처한 가정들은 신용카드를 남용한 독신자들이 아니라 자녀를 둔 성실한 맞벌이 부부나 이혼 가정이라는 점을 제시한다.
이 지점에서 경제학자들이 거론하는 ‘과소비의 신화’와 ‘악덕채무자 신화’가 통렬히 반박된다. 저자들은 1970년대와 현재 미국 가정의 소비패턴을 비교해 명품을 선호하고 외식을 많이 한다 해도 전체 가계에서 의복비와 식료품비, 그리고 가전제품 구입비의 비중은 과거보다 낮다는 점을 제시한다. 지출 비중이 높아진 것은 주택비와 교육비 등 자녀를 위한 투자비다.
남편의 ‘나 홀로 수입’이 대세였던 1970년대 중산층 가정에 비해 물가상승률을 감안해도 75%나 더 많은 소득을 올리고 있는 2000년대 미국 맞벌이 부부들이 경제적으로 더 불안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들이 ‘입찰경쟁’이라고 이름 붙인 신자유주의적 ‘게임의 법칙’ 때문이다. 미국 중산층에 교외의 주택, 건강보험, 유아교육, 대학교육은 이미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그러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맞벌이 부부들의 소득의 평균 75%를 이들 고정비용에 쏟아 붓고도 그 ‘낙찰가’를 감당키 어렵게 됐다. 일례로 시카고 공립학교 교육구가 제공하는 유아 종일반의 등록금은 일리노이 주립대 등록금보다 많다.
따라서 맞벌이 부부 중 어느 한쪽이라도 실직을 하거나 병에 걸린다면 가정은 치명적 타격을 입게 된다. 이미 미국인들이 파산할 확률은 이혼하거나 암에 걸릴 확률보다 높다.
대책은 무엇인가. 저자들은 학군제의 폐지, 유아교육의 공교육화, 대학등록금 동결, 소비금융 규제강화 등을 제시한다. 그러나 결국 본질적 대안은 돈을 쏟아 부을수록 오히려 중산층의 삶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신자유주의적 경쟁의 악순환을 끊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교육정책을 탓한 경제계의 논리는 틀렸다. 원제 ‘The Two-Income Trap’(2003년).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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