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책][문학예술]‘나비 따라 나선 아이 나비가 되고’

  • 입력 2004년 5월 21일 17시 29분


1997년 강원 횡성군 갑천면 하대리에 정착한 가영이네 가족이 세운 ‘홀로세 생태학교’의 전경을 담은 그림. 나비와 반딧불이, 이 학교에는 쇠똥구리, 누에 등을 키우면서 관찰할 수 있는 사육실과 수서곤충들이 모여 사는 연못 등이 정성껏 꾸며져 있다. 사진제공 홀로세 생태학교
1997년 강원 횡성군 갑천면 하대리에 정착한 가영이네 가족이 세운 ‘홀로세 생태학교’의 전경을 담은 그림. 나비와 반딧불이, 이 학교에는 쇠똥구리, 누에 등을 키우면서 관찰할 수 있는 사육실과 수서곤충들이 모여 사는 연못 등이 정성껏 꾸며져 있다. 사진제공 홀로세 생태학교

◇나비 따라 나선 아이 나비가 되고/이가영 지음/220쪽 9000원 뜨인돌

울퉁불퉁한 비포장 길에 전기도 안 들어오고 마실 물도 마땅치 않은 강원 횡성군 새골. 가영이네 가족은 1997년 여름 이곳에 정착했다. 그곳에서 그들은 폐가를 고쳐 살림을 차리고 거친 돌밭을 고르고, 나무와 꽃을 심고, 물길을 열어 지금의 ‘홀로세 생태학교’(www.holoce.net)를 세웠다.

서울아이였던 가영이는 초등학교 3학년 때 학교대표로 동시 암송대회에도 나가고, 귀여운 외모 덕문에 미대 다니는 이웃집 언니의 그림 모델로도 활동했던 말괄량이 소녀였다. 그러나 산골마을로 이사한 후로는 ‘헤라클레스’로 불린다. 팔씨름 천하무적에 20kg 사료포대쯤은 거뜬히 들어 나르는 가영이에게 생태학교에 입교하는 아이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내가 준 먹이를 나비가 먹다니! 이제 홍점알락나비는 나의 소중한 친구가 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눈물나게 감격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홍점알락나비가 내 손 위에 가녀린 발을 살짝 디딘 것이다! 아아! 심장이 콩닥콩닥, 온몸이 찌릿찌릿! 당장이라도 가족들한테 자랑하고 싶지만 소리를 지르면 날아갈까 봐 숨소리도 제대로 낼 수 없었다.”

포충망조차 제대로 못 들던 꼬마소녀 가영이는 어느덧 고등학교 1학년생이 됐다. 가영이가 들려주는 나비와 도롱뇽, 누에나방, 청호반새, 쉬리, 늦반딧불이 등 생명체의 한살이에 대한 관찰기록은 너무나 생생하다. 가영이네 가족은 점차 사라져가는 반딧불이의 애벌레를 사육하는 데 성공해 매년 9월 생태학교 주변에서 ‘늦반딧불이 축제’를 연다.

‘홀로세’란 신생대 제4기 중 170만년 전부터 현재까지를 일컫는 용어. 가영이네 생태학교에는 나비를 사육하는 ‘그랜드 피라미드’, 풍뎅이 박물관, 수생식물의 보금자리인 ‘워터월드’가 들어서 있다. 이 모든 것은 가영이네 식구가 7년여 간 맨손으로 일궈낸 것이다. 가영이의 오빠는 이곳에서 ‘꼬리명주나비 누대사육과 자원화방안’이란 연구를 해 전국과학전람회에서 동물부문 특상을 받았다.

홀로세가 있는 새골은 겨울이면 넉 달은 족히 눈 속에 갇혀 살아야 하는 곳이다. 98년 여름에는 엄청난 폭우에 제방이 무너져 홀로세 생태학교가 폐허로 변했고, 생태학교로 올라가는 굽이굽이 길에서 차가 굴러 떨어져 가족들이 사고를 당한 일도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가영이네 가족은 이곳을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유지하는 데 최선을 다해왔다. 자연 속에서 만나는 온갖 어려움을 함께 헤쳐 나가는 가영이네 가족에게선 진한 사랑이 넘친다.

“홀로세에 오기 전 병원의 수간호사였던 엄마는 혹 다치거나 아픈 아이들이 있으면 척척 해결해 주시는 신기한 약손이다. 음식 솜씨도 뛰어난 엄마의 별명은 바로 ‘대장금’이다. 엄마는 ‘물매화’를 닮았다. 가느다란 꽃대 위에 하얀색 꽃이 피는 물매화는 보기엔 가냘프지만 절대 꺾이지 않는다. 약한 듯하면서도 절대 쓰러지지 않는 엄마!”

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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