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아이들이 먼저 발견한 책을 소개하려고 한다. 신간서가에 꽂혀 있던 이 책은 몇몇 아이들 사이에서 돌고 있었다. 입소문으로 자기들끼리 돌려 읽는 책들은 대부분 인터넷 소설과 닮은 연애소설이거나, 오락과 교육을 겸한 가벼운 책들이었는데 웬일인가 싶었다. 도서관에 온 학생에게 뭐가 좋았느냐고 물으니 멋쩍어하며 “감동적”이라고 말하고는 슬며시 책을 놓고 나간다. 어떤 감동이 눈 밝은 아이들 마음을 두드렸을까 궁금해서 읽기 시작한 책, 이 책의 아름다운 소년 이크발은 그렇게 나에게 왔다.
‘난 두렵지 않아요’는 가난 때문에 카펫 공장에 끌려가 열악한 노동 환경 아래서 착취를 당해야 했고, 공장을 탈출한 이후 자유와 희망을 전파하며 환경을 개선하는 일에 몸을 바친 열세 살 소년 이크발의 실화에 바탕을 둔 소설이다. 가족이 진 빚 때문에 네 살 때 카펫 공장에 팔려가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으면서도 두려움 없이 자유와 희망을 전파했던 이크발은 1995년 부활절 날 파키스탄에서 살해되었다. 우리 돈으로 25원인 1루피를 벌기 위해서 매일 10시간 이상의 노동에 시달리며 ‘내년 여름’이라거나 ‘내가 커서’라는 꿈꿀 수 있는 미래를 저당 잡혀야 했던 아이들. 그들의 실태를 알리고 착취구조를 허물기 위해 싸웠던 이크발은 짧은 생애를 그렇게 빛으로 밝혔다.
작가는 이크발의 이야기가 ‘그때의’ 사건이 아니라 이윤이 유일한 기준인 상황에서 지금도 진행 중인 사건이며, 노예 상태에서 일을 하고 있는 어린이의 존재를 더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기를 바라는 뜻에서 소설 형식을 택했다고 말한다. 아무래도 의도를 담은 소설이기에 문학성의 잣대로 보면 다소 헐겁기는 하다.
그러나 이크발과 친구들의 이야기는 책을 덮을 때까지 눈을 뗄 수 없도록 생생하게 이어지며, 가슴 뭉클한 감동을 준다. 교훈을 앞세우지 않고 읽는 재미로 시작해서 가슴에 와 닿는 파문은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천천히 힘 있게 전한다. 아마도 이런 힘 때문에 아이들이 먼저 읽고 친구들에게 추천했나 보다. 비록 안타깝게 생을 마감했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한, 이크발은 한국의 1318들에게도 자유와 용기, 희망을 전하며 살아 있을 것이다.
청계천을 복원하면서 전태일 거리를 조성하자는 논의를 한다고 들었다. 우리에게도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 있다. 이 책을 읽은 아이들에게 이어서 소개하고 싶은 인물이다. 어려운 환경에 놓인 다른 아이들을 책으로 만날 때, 적어도 우리 청소년 독자들이 자신이 상대적으로 행복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다행으로 여기는 수준만은 아니기를, 한 걸음 넘어서기를 바란다.
서미선 서울 구룡중 국어교사·책으로 따뜻한 세상 만드는 교사모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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