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희덕
벌겋게 녹슬어 있는 철문을 보며
나는 안심한다
녹슬 수 있음에 대하여
냄비 속에서 금세 곰팡이가 피어오르는 음식에
나는 안심한다
썩을 수 있음에 대하여
썩을 수 있다는 것은
아직 덜 썩었다는 얘기도 된다
가장 지독한 부패는 썩지 않는 것
부패는
자기 한계에 대한 고백이다
일종의 무릎 꿇음이다
그러나 잠시도 녹슬지 못하고
제대로 썩지도 못한 채
안절부절,
방부제를 삼키는 나여
가장 안심이 안 되는 나여
- 시집 ‘그곳이 멀지 않다'(문학동네) 중에서
‘나는 절대로 썩지 않는다, 녹슬지 않는다’고 중얼거리던 이들 가슴이 덜컹하겠다. ‘가장 지독한 부패는 썩지 않는 것’에 있다니.
그랬구나. 썩지 않는 철밥통, 녹슬지 않는 철의 권능을 지닌 이들에게서 냄새가 나던 것은 그 때문이었구나. 번쩍거리는 광채가 다름 아닌 구린내였구나.
아니, 남의 얘기 할 때가 아니다. 나 또한 ‘썩지 않으려고, 녹슬지 않으려고’ 그리하여 초등학교 때 연필 싸움하듯 ‘녹슨 너를 부러뜨려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닌가.
녹슬 때 녹슬고, 썩을 때 썩는 것이 아름다운 일임을 새삼 알겠다. 다만 미리 녹슬면 ‘내’가 없고, 나중 썩으면 ‘너’를 더럽히니 ‘때’를 가리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가.
반칠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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