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을 보면 기상시간인 인시(寅時·오전 3∼5시)에서 잠자리에 드는 해시(亥時·오후 9∼11시)까지 공부와 집안일로 잠시도 쉴 틈이 없다. 진시(辰時·오전 7∼9시)에는 식사 후 독서를 하고 자식들에게 숙제를 내주거나 때때로 벗들과 학문을 논한다. 사시(巳時·오전 9∼11시)에는 자제들에게 독서를 시키고 자신도 독서에 임하다가 손님을 응접하고 한낮인 오시(午時·오전 11시∼오후 1시)에는 집안 노복(奴僕)들의 직무와 자식들의 독서를 살핀 후 독서하고 편지를 쓴다.
밤이 되면 유시(酉時·오후 5∼7시)에는 부모의 잠자리를 살피고 가솔들의 직무를 점검한 뒤 자제들이 낮 동안의 독서에서 품은 의문에 답해 준다. 술시(戌時·오후 7∼9시)에는 집안을 순시한 뒤 일기를 쓰고 자제들에게 배운 것을 복습하게 한다.
‘일용지결’을 보면 음풍농월의 여유는 선비들의 일면일 뿐이었다. 그들은 집 안팎의 번다한 일들과 씨름하는 한편 부모봉양과 자녀교육 및 가정의 재정 등을 돌보아야 하는 생활인이었다. 저자는 “산더미 같은 집안일이 바로 공부의 참된 장이다… 일상의 일 속에서 자신의 병폐를 살펴 과감히 제거할 수 있다면 학문의 방법으로 이보다 나은 것이 있겠는가”라는 주희(朱熹)의 말을 인용했다.
‘일용지결’은 선비들의 ‘시(時)테크’ 지침서인 셈이다. 오늘날의 ‘시테크’가 이익이나 효율이라는 공리(功利)적 목적에 지배되는 반면 선인들의 그것은 도덕적 가치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근대 이전까지 오늘날 공리의 잣대로는 이해되지 않는 풍경, 즉 대의를 위해 자기 이익은 물론 목숨까지도 기꺼이 희생하는 선비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이처럼 한순간도 허투루 보내지 않는 일상의 ‘시테크’를 통해 준비된 것이었다.
이 ‘일용지결’이 조선의 큰 선비 퇴계 이황(退溪 李滉)의 11대손이자 대한제국 말 국망(國亡)에 임해 음식을 끊고 죽음을 맞음으로써 지식인의 책임을 다했던 향산 이만도(響山 李晩燾·1842∼1910)의 손때 묻은 애장서라는 사실이 예사롭지 않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박경환 한국국학진흥원 책임연구원·동양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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