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 로봇이 잠을 깨운다. 식탁에는 이미 아침밥이 정갈하게 차려져있다.
세면을 하고 밥을 먹는 사이 로봇은 입고 나갈 옷을 들고 온다. 퇴근 후 집에 돌아오니 청소 로봇이 집안 대청소를 해 놓았다.
유모 로봇은 아기에게 우유를 주고 자장가를 불러주고 있다. 식구들은 모두 잠들었지만 경비 로봇은 밤새 집안 주변을 돌며 집을 지킨다.
영화 속에서나 봄 직한 상상. 그러나 꿈이기만 할까?
2004년 5월 초. 최근 시판을 시작했거나 시판할 예정인 로봇 네 녀석을 집으로 데려왔다. 그들과 함께 생활한 사흘간의 이야기.》
○ 영화속 한 장면처럼
일단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각 로봇을 소개하고 간단히 기능을 설명했다.
“오토로(이하 오토)는 청소용 로봇인데 타이머를 맞춰놓으면 알아서 집안을 청소해요”라고 말하자 어머니는 “걸레질도 해?”라고 반문하셨다.
“그건 아니고 진공청소기가 혼자 돌아다닌다고 생각하면 돼요”라는 대답에 어머니는 “걸레질이 더 힘든 건데…”라고 한마디.
홈 로봇인 아이로비(이하 로비)가 무선 인터넷으로 연결된 모니터를 통해 우리 집 지키기 기능을 할 수 있다고 하자 대뜸 아버지는 “그럼 인터넷 고스톱도 되는 거냐?”며 좋아하셨다.
아직 그런 것은 안 되고 아기들 위해 동요 구연이나 노래에 맞춰 약간의 율동을 할 수 있다고 하자 실망하시는 눈치가 역력했다.
트랜스봇(이하 랜스)는 별로 인기를 끌지 못했다. 이 장난감 로봇을 가지고 놀 사람이 우리 집에는 없었기 때문. 이 녀석은 두 대가 있을 경우 서로 전자 빔을 쏘며 전투 게임을 즐길 수 있다.
애완견 로봇 아이보(이하 이보)를 가장 좋아한 것은 우리 집 강아지였다. 놈은 이보를 핥고 껴안고 자기 집으로 데려가 놔주지를 않는다. 혼자 살아서 적적했던 것일까. 그동안 ‘고독이 몸부림’쳤나보다.
로비의 기능 중에 우리 집에서 가장 쓸모 있었던 것은 홈 캅스(경비) 기능이었다.
화상 메신저 프로그램을 컴퓨터에 다운 받아서 연결하면 외부에서도 로봇의 카메라를 통해 집안 구석구석을 살펴볼 수 있다. 로봇의 이동도 메신저를 통해 조종할 수 있어 가스 밸브를 잠갔는지, 문은 제대로 잠겼는지, 누가 집에 들어왔는지 등을 살펴볼 수 있다.
갑자기 엉뚱한 생각이 든다. ‘이걸 아는 여자후배 집에 빌려줘? 흐흐흐.’
로비로 인한 최대 피해자는 엉뚱하게 우리 집 강아지가 됐다. 낮에 항상 집에 혼자 있어 아무도 알지 못했던 놈의 일상생활이 들통이 난 것.
놈은 내가 없을 때 버젓이 내 침대 위해 올라가 잠을 자는가 하면 시골 잡견처럼 쓰레기통을 뒤져 과자부스러기를 먹고 베개를 물어뜯어 구멍을 내기도 했다.
비록 대상이 달랐지만 로봇의 감시 기능은 만족할 만했다.
어머니는 로비의 용도를 좀 더 다양하게 하자고 제안하셨다. 자전거에 달린 바구니를 로비 등에 부착하자는 것. 리모컨으로 방마다 로비를 보낼 테니 방안의 빨래를 바구니 안에 집어넣으라는 것이다. 식구들이 늘 빨래를 세탁기에 넣지 않고 방에 그대로 늘어놓는 데 대해 어머니 잔소리가 끊이지 않던 터였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다.
○ 밥은 잘 찾아먹네
기능이 단순한 청소용 로봇인 오토는 별무리 없이 자기 일을 해나갔다. 하긴 설정해 둔 타이머에 맞춰 돌아다니며 먼지를 빨아들이는 게 전부니 크게 어긋날 일도 별로 없긴 하다.
로봇이 청소를 한다고 사람이 전혀 손을 안 대도 되는 것은 아니고 하루에 서너 번 할 것을 한 번 정도로 줄여주는 식이다.
그래도 어머니는 좀 편해지셨는지 관심을 보이셨다.
“얘! 그거 얼마니.”
“400만원이요. 사시려고요?”
“됐다, 냅둬라.”
지난달부터 판매 중인 로비도 395만원으로 상당히 비싼 편.
업체에서도 이 같은 점은 충분히 알고 있지만 약간의 수요층만 자리 잡아도 마치 휴대전화처럼 급속도로 기술이 발전해 가격이 크게 낮아질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하긴 10여년 전만 해도 휴대전화가 몇백만원이었으니….
두 녀석 다 배가 고파지면 스스로 알아서 밥을 먹으러 간다. 어디에 있더라도 충전기 위치는 귀신같이 파악해 찾아간다. 현실의 로봇을 영화 속 로봇을 기준으로 생각하면 상당히 실망스럽지만 이 점만큼은 거의 영화와 같은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사람이든 로봇이든 먹고살자고 일하는 것 아닌가?
로비는 영상 쪽지를 주고받을 수도 있다. 로비에게 장착된 카메라로 동영상을 찍어 가족의 컴퓨터로 보내거나 밖의 컴퓨터로부터 영상을 받아 편지의 주인에게 알려준다.
한 이동통신 CF에 나온 장면처럼 쑥스럽지만 두 손을 머리 위에 올리고 사진을 찍어 “아빠 사랑해요∼”라고 영상 쪽지를 보냈다.
다음날 확인했지만 열어보시지를 않는다. 인터넷 고스톱 외에는 컴맹이신 탓이다.
“아빠에게 쪽지가 왔습니다”라고 계속 외치는 로비가 불쌍하다.
처음부터 프로그램된 것이기는 하지만 이 녀석도 주인을 닮아서 심심한 것은 못 견디는 것 같다. 몇십분 가만히 나뒀더니 “아이 심심해”라며 요동을 친다. 거참∼.
내가 너를 위해 놀아줘야 한단 말이냐.
참고로 이 녀석은 유아나 어린이 교육용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나와 놀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 성큼 다가온 로봇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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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로봇이 있다보니 인터넷을 검색하다가도 로봇 관련 내용들을 찾게 된다. 무심코 들어간 한 사이트에서 지난달 국내에서 개발된 한 로봇이 KBS 교향악단 지휘를 한 사진과 글을 발견했다.일명 ‘로차르트’. 아마 로봇과 모차르트의 합성어인가보다.
마침 사진 속 연주자 중에 아는 KBS 교향악단 단원이 있어 어느 정도 수준이었느냐고 전화로 물었다.
“응, 리허설 때는 잘 맞았는데 연주할 때는 좀 차질이 생겼어. 지휘는 끝났는데 음악은 두 마디 정도 더 진행됐거든. 그래도 지휘자처럼 박자 구별은 하던데?”
아직은 음악을 들으며 각 상황에 맞게 지휘를 하는 것이 아니라 미리 입력된 악보와 빠르기대로 팔을 휘두를 뿐이라는 것. 하지만 오른손으로 지휘를 하면서 왼손으로는 나올 악기를 가리켜 주는 등 가능성도 엿보였다고 그는 말했다.
로봇하면 일본의 ‘아시모’나 ‘큐리오’처럼 먼 외국의 이야기인 줄만 알았는데 의외로 국내에서도 많은 로봇들이 개발되고 있었다.
말처럼 성인 2명을 태우고 도로 위를 다닐 수 있는 4족 보행 로봇도 개발된 상태. 전시장을 돌아다니며 전시물에 대한 설명을 해주는 안내 로봇, 진짜 새처럼 날아다니는 사이버드, 혼자 이동하기 힘든 노인이나 장애인의 보행을 도와주는 로봇 등이 판매는 아직 안되고 있지만 개발을 마친 상태다.
영화 ‘터미네이터’나 ‘AI’도 시기상의 문제지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것.
취재 중에 만난 로봇 업체 관계자는 “인간이 상상하는 것은 언젠가는 현실로 나타나기 마련”이라며 꿈같이 들릴지는 모르지만 영화 ‘바이센테니얼맨’에 등장한 가사용 로봇이 나타날 날도 머지않았다고 했다.
로봇과 함께 살았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영화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저 조금 편해진 정도. 그래도 언젠가는 그런 영화 같은 날이 올 것이라는 가능성을 조금은 엿본 것 같다.
잠자리에 드니 각종 로봇에 둘러싸여 편리한 생활을 하고 있는 내 모습과 함께, 늙어서 강아지 로봇을 쓰다듬으며 황혼을 바라보는 모습도 문득 떠올랐다.
이진구기자 sys1201@donga.com
▼트랜스봇▼
▽키=52cm
▽몸무게= 4.5kg
▽특징=두발로 걷는 게임용 로봇. 로봇끼리 전자빔을 쏘며 전투 게임을 실행할 수 있음. 장난감 자동차로도 변신. 유진로보틱스 개발. 판매시기 미정.
▼아이보▼
▽키=27cm
▽몸무게=1.6kg
▽특징=1999년 일본 출생. 애완견 로봇. 쓰다듬으면 꼬리를 치는 등 애완견처럼 행동하고 공을 좇거나 장애물도 피할 수 있음.
일본 소니 개발. 일본 내 판매가 25만엔(약 250만원).
▼오토로▼
▽키=28cm
▽몸무게=10kg
▽특징=진공청소기 모양의 청소용 로봇. 집안을 돌아다니며 먼지를 빨아들임.전원이 소모된 경우 스스로 충전기로 이동해 충전을 함. 수시로 자신의 상태를 점검하고 이상 유무를 확인. 한울로보틱스 개발. 올 하반기 판매. 예정. 예정가 400만원.
▼아이로비▼
▽키=65cm
▽몸무게=15kg
▽특징=감시용 로봇. 시력 33만 화소 카메라 내장. 바퀴로 초당 최대 25cm 이동. 음성인식. 탑재된 모니터를 통해 우리 집 지키기(홈 캅스) 등의 역할을 함. 3시간마다 밥(전기)을 먹음. 유진 로보틱스 개발. 지난달부터 판매 중. 395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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