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미기자의 감성크로키]문자메시지의 단상

  • 입력 2004년 5월 27일 21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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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패였다.

친구에게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보낸다는 것이, 그만 엉뚱한 사람에게 보내고 말았다.

메시지를 보낸 뒤에야 실수를 깨달았다. 친한 관계일수록 기계의 저장 기능을 이용하지 않고 기억력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다. 나의 엉뚱한 자만심은 친구의 번호 중 6과 2의 순서를 바꿔 누르는 오류를 범했다.

퇴근 후 술자리를 갖자는 제안을 받은 ‘엉뚱한 사람’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마침 옆에 있던 40대 중반의 남자 선배는 당황해하는 내게 자신의 휴대전화에서 한 문자 메시지를 보여 준다.

“미란아, 오빠 죽는다. 잘 있어라. 인생이라는 건 신용과 의리로 이루어지는 거야. 그런 사회가 언제 올까.”

선배는 지난달 초 자신에게 잘못 배달된 이 메시지를 지우지 않고 간직하고 있다고 했다. 문자를 잘못 보내온 사람이 무안할까봐 답변은 보내지 않았다고 했다.

가로 세로 3cm 안팎의 휴대전화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문자 메시지에 얽힌 사연이 꽤 많을 것 같았다.

함께 낙지볶음밥을 먹은 30세 여자는 “문자 메시지 때문에 남자친구와 헤어지게 됐다”고 말했다. 이건 무슨 소리인가. 그녀에 따르면 존대말에서 반말로 어색하게 바뀌는 순간, 그러니까 이성적 관계에서 감성적 관계로 옮아가는 순간 서로의 반말 문자 메시지가 감정의 왜곡을 낳았다는 것이다. 이모티콘에는 한계가 있다.

20대 중반의 또 다른 여자는 ‘의도된 실수’로 상대방의 감정을 확인한다고 했다. 다른 사람에게 보내는 문자 메시지를 관심 있는 남자에게 일부러 보낸 뒤, 그의 답변을 통해 ‘사건’을 만든다는 것이다. 만약 관심 있는 남자가 답변을 보내오지 않으면 그를 향한 관심을 접는다고.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는 바쁜 현대인들의 의사소통 도구로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 보면 문자 메시지는 수신인보다 발신인 중심인 경우가 더 많다. 직접 통화에서는 간파되는 상대방의 정황을 문자 메시지를 통해서는 무시하기 쉽다. 문자 메시지를 보낸 뒤 상대방의 답변을 받지 못하면, 홀로 애태우거나 언짢아하지는 않는가.

한정된 휴대전화 화면에 할 말을 담기 위해 단어를 아끼다 보니 감성이 사그라들어 오해를 가져오기도 한다. 예기치 않은 해프닝을 만드는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통해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배운다.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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