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푸드]마이 웰빙/모졸리 부회장-이병우 총주방장

  • 입력 2004년 5월 27일 21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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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코모 모졸리 슬로푸드 국제본부 부회장(왼쪽)과 이병우 롯데호텔서울 총주방장이 된장찌개 등 한국식 슬로푸드 식탁을 마주하고 앉았다. 이들은 “진정한 웰빙은 제때 제 땅에서 자라난 재료로 만든 슬로푸드에서 시작된다”고 입을 모았다. 이종승기자 urisesang@donga.com
자코모 모졸리 슬로푸드 국제본부 부회장(왼쪽)과 이병우 롯데호텔서울 총주방장이 된장찌개 등 한국식 슬로푸드 식탁을 마주하고 앉았다. 이들은 “진정한 웰빙은 제때 제 땅에서 자라난 재료로 만든 슬로푸드에서 시작된다”고 입을 모았다. 이종승기자 urisesang@donga.com

《“우리는 속도의 아름다움이 세계를 더욱 빛나게 할 것을 선언한다.”

1909년 이탈리아의 시인 필리포 마리네티가 파리에서 발표한 ‘미래주의 선언’의 일부다. 기계 문명이 가져온 속도의 혁명을 찬양하며 미래파 운동을 태동시켰다. 꼭 80년 만에 같은 장소에서 역사는 전복됐다. 89년 파리에서 이탈리아의 슬로푸드 국제본부가 ‘슬로푸드 선언’을 채택했다.

“우리는 속도의 노예가 됐다. 속도가 인류를 멸종시키기 전에 속도에서 벗어나자. 우리의 대응은 슬로푸드에서 시작된다.”

슬로푸드는 인공적으로 대량생산해 획일적인 맛을 내는 패스트푸드에 반대해 생겨난 개념. 자연의 시간에 맞춰 제 자리에서 길러낸 식품으로 자연의 맛을 내는 음식을 이른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슬로푸드 국제본부의 자코모 모졸리 부회장(50)이 20일 이병우 롯데호텔서울 총주방장(50)을 만나 슬로푸드와 웰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슬로푸드 국제본부는 86년 맥도널드의 이탈리아 진출에 반대해 이탈리아 브라에서 시작된 단체로 80여개국에 8만여 회원이 있다. 이 총주방장은 한국에서 슬로푸드를 알리는 데 앞장서 왔다. 롯데호텔서울은 30일까지 7개 레스토랑에서 슬로푸드 페스티벌을 연다.》

○발효식품은 대표적 슬로푸드

이날 두 사람의 만남은 한식 식탁을 마주하고 이뤄졌다.

메뉴는 △유기농 검은콩과 두부, 야채로 된 샐러드 △늙은 호박죽 △고추장 장떡 △제주산 전복산적 △금산수삼 튀김 △유기농야채쌈 정식 △냉이 청국장 된장찌개로 구성됐다. 이 요리들은 이 총주방장이 모졸리 부회장을 위해 특별히 슬로푸드 콘셉트로 차려본 것.

재료는 모두 본디 그것이 잘 자라나는 땅에서 난 것이거나, 유기농법으로 건강하게 재배하고 제철에 맞춰 딴 것, 충분히 시간을 두고 발효시키거나 익힌 것을 사용했다.

이 총주방장이 “한국의 전통 발효식품은 슬로푸드의 전형”이라고 소개하자 모졸리 부회장은 “검은색 두부는 어떻게 만드느냐” “검은콩으로 전통 과자도 만드느냐”는 등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그는 또 “호텔로 오기 전 경동시장에 들러 한국의 인삼을 잔뜩 샀다”면서 수삼 튀김의 맛이 특히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 제 지역 식품이 가장 안전

두 사람의 가장 큰 관심사는 농산물 수입 문제였다.

모졸리 부회장은 “한국에도 중국산 수입 마늘이 많으냐”고 묻자 이 총주방장은 “중국산은 토양이 달라 한국산과 맛이나 질감이 다른데도 국산으로 둔갑해 팔리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두 사람은 “땅을 떠나 오랜 시간 이동한 식재료는 변질되기 쉽고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기도 힘들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이 총주방장이 “다국적 기업들이 패스트푸드로 세계 각국에 획일화된 입맛을 강요하고 있지만 이에 맞서 식생활도 다양화, 지역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모졸리 부회장은 “지금까지는 ‘세계화’가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돼왔지만 이제부터는 각 지역의 특성을 존중하면서 교류를 활성화하는 ‘좋은 세계화’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슬로푸드 국제본부는 4년 전부터 ‘지역화를 통한 세계화’라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다.

○ 어릴때 교육이 중요

그러나 현실적으로 슬로푸드가 대량생산된 수입제품에 비해 훨씬 비싸다는 것은 한계로 지적돼 왔다. 때문에 ‘돈 많은 자들이 누릴 수 있는 사치’라는 비판도 없지 않았다.

이에 대해 이 총주방장은 “슬로푸드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면 농산물 생산의 틀 자체가 슬로푸드 중심으로 바뀌면서 가격도 낮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모졸리 부회장은 “한번을 먹더라도 안전하고 질이 좋은 음식을 먹는 소비문화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슬로푸드 국제본부는 의식 변화를 위해서는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고, 여기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국제 세미나를 개최하거나 잡지를 발간하고 학교에 전문가들을 보내 어린이들에게 슬로푸드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가르친다. 어렸을 때부터 음식에 대해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는 게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이 같은 전략의 결정판이 이탈리아 폴렌조와 콜로르노에서 10월 첫 강의를 시작하는 식문화전문대학이다. 회원들이 자금을 모아 설립하고 이탈리아 교육부가 공식 인가한 세계 첫 슬로푸드 전문대학이다. 토양생태학과 농어업 석사과정을 전공하게 될 70명의 학생 가운데 45명이 외국인. 귀국 뒤 자신의 고향에서 슬로푸드를 전파할 ‘사도’들이다.

곽민영기자 havefun@donga.com

▽자코모 모졸리 부회장은

이탈리아 밀라노대에서 철학과 미학을 전공한 후 음식과 와인을 주로 연구해 왔다. 음식문화 잡지에서 편집장 등으로 일하다 슬로푸드 운동에 참여했다. 일본을 자주 방문해 일본의 슬로푸드를 연구해 온 ‘동양통’. 19일 방한한 그는 여러 시장을 돌면서 전통 식재료를 구입하고 제주 등을 찾아 지역 음식을 맛본 뒤 25일 이한했다.

▽이병우 총주방장은

경희호텔대를 졸업하고 프랑스에서 유학하며 프랑스 요리를 전공했다. “프랑스 요리를 전공하지 않았다면 한식 요리사가 됐을 것”이라는 그는 2000년 당시 한국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던 슬로푸드를 홍보하기 위해 ‘세계 환경 먹거리 축제’를 열었다. 2002년에는 일본에서 한국의 슬로푸드를 알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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