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 학생들은 글쓰기에 약하다’는 말은 편견을 넘어 사실이 되어가는 느낌이다. 입시과정에서부터 이공계 학생들에게는 쓰기 능력이 중요하지 않다. 수학과 논리적 사고가 인문적 소양들을 하나하나 대체해 가는 것이 최근 이공계 입시 경향이다. 대학 진학 후에도 이공계생들은 주로 딱딱한 수식과 건조한 논리로 이루어진 책들을 접하고 그와 비슷한 결과물을 낸다. 그러니 자기 분야 전문지식을 일반인들이 읽을 만하게 쓸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과학자가 적고 과학에 살갑게 다가갈 수 있는 책도 드물 수밖에 없다.
이 점에서 ‘과학 읽어주는 여자’는 반가운 책이다. 이 책은 과학자들에 대한 세인의 편견을 뒤집는다. 저자인 이은희씨는 생물학을 전공했지만 그녀의 시야는 아주 넓다. 나노 기술에서부터 우주의 고등 생물체를 찾는 세티(SETI) 계획까지, 뇌파 연구에서부터 인터넷 아바타까지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주제들을 보면 ‘자기 분야밖에 모르는 사람’이라는 과학자에 대한 선입견은 어느덧 사라진다. 과학의 엄밀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차갑게 느껴지지 않는 부드러운 서술을 구사한 점도 돋보인다. 기능성 화장품을 소재로 삼아 피부에 해로운 자외선을 설명하고 건강검진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간의 기능 등등을 설명하는 식이다. 과학책을 읽는다기보다 꼭 또래 선배의 수다를 듣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다.
과학적 소재들을 다루면서도 삶에 대한 문제의식을 놓지 않는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짧고 다양한 꼭지들의 결말은 대부분 사회적이고 윤리적인 화두들로 끝난다. 성호르몬 치료에 대한 논의를 끝내며 성 정체성과 양성(兩性) 조화에 대한 생각거리를 던지고, 비만 유전자를 설명하면서는 육체에 대한 관심 속에 묻혀버린 정신의 아름다움을 일깨운다. 일상과 연관되면서도 객관적이며, 삶에 대한 고민 속에서 더욱 냉철하게 주제로 파고드는 저자의 과학 정신은 꽃의 겉모양을 넘어서 세포의 아름다움까지 즐겼다는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을 떠올리게 한다.
학부별로 대학 내신에 반영되는 과목이 달라지면서 이제는 고등학교에서도 ‘전공’ 개념이 뚜렷해지고 있다. 학업 부담이 적어지고 깊이 있는 지식을 쌓는다는 장점도 있지만 지식 소양의 폭이 그만큼 좁아진다는 단점도 있다. 지금도 인문계 학생들 중에는 과학 치(痴)들이 많고 이공계 학생들은 인문적 수련을 쌓을 기회가 적다. 큰일이다.
훌륭한 청소년 교양도서는 교육과정의 빈자리를 메워주는 역할을 한다. ‘과학 읽어주는 여자’는 문과 아이들에게는 과학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없애주고 이과 아이들에게는 생활에서 살찌운 풍요로운 과학의 즐거움을 일깨워 주는 좋은 책이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학교 도서관 총괄 담당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