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속 마을에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이 있었다. 동자(童子)라고 불리는 특별한 아이가, 자기가 사는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로 가고 싶으면 ‘1000년 된 구실잣밤나무’ 밑동에 있는 빈 구멍 속으로 들어간다. 그러고는 만나고 싶은 사람, 보고 싶은 것을 마음을 다해 빌면서 잠이 든다. 그렇게 진심으로, 마음을 다해 빌면 보고 싶은 사람, 만나고 싶은 것이 있는 곳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일본에 두 번째 노벨문학상(1994년)을 안겨주었던 오에 겐자부로가 어른과 아이가 함께 읽을 수 있도록 쓴 판타지소설이다. 그는 “소설가로 나이를 먹으면서 ‘지금’의 리얼함과 신비함을 쓰고 싶어서 가족과 어린 친구들에게 약속하고 오랫동안 준비해 온 유일한 판타지”라고 밝히고 있다.
‘2백년의 아이들’은 소설가인 아버지가 엄마와 같이 미국 대학에 연수를 간 사이에 여름방학을 아버지의 고향 숲 속 마을에서 보내게 된 장애인 큰오빠 마키, 장녀 아카리, 막내 사쿠 등 삼남매의 모험 이야기다. 무대는 1984년 시코쿠의 숲 속 마을이지만 삼남매는 ‘꿈꾸는 사람’의 타임머신을 타고 120년 전과 80년 후의 세계를 찾아간다.
삼남매는 에도 말기 도산(逃散·농민이 영주의 착취를 피해 다른 지방으로 도망치던 일)하는 농민 무리를 이끄는 동자를 만나고, 메이지 초기의 한 여자 유학생을 미국에서 만나기도 한다. 또 2064년 미래사회를 방문해 현재와 미래를 새롭게 만드는 ‘새로운 사람’에 대한 희망을 품기도 한다. 이런 삼남매의 시공을 초월한 여행에는 ‘베이컨’이라 불리는 개가 안내자로 따라다닌다.
작가는 ‘지금’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과거’와 ‘미래’에 대한 고민을 통해 삼남매의 자의식의 성숙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그린다. 삼남매의 친구 아라타는 미래가 무의미하다며 회의에 빠져 있는 사쿠에게 이렇게 말한다.
“강이 여기까지 흘러와 있잖아? 여기를 지금이라고 하자고. 여기까지 흘러온, 강 위쪽은 과거지. 더 이상 바꿀 수가 없어. 하지만 말이야. 여기에서부터 흘러가는 강 아래쪽은 바꿀 수 있지. 예를 들어 여기에 댐을 만든다면 어떻게 될까? 지금, 여기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미래는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이 작품엔 무엇보다 최근 몇 년 동안 오에 겐자부로가 키워드로 삼은 ‘새로운 사람’에 대한 고찰이 곳곳에 눈에 띈다. ‘새로운 사람’은 일본 최초의 유학생 무메양의 모습을 통해서나, 삼남매 아버지의 입을 통해서도 구체화된다.
“어느 시대나 정치, 실업계, 매스컴에서 권력을 쥔 자들은 계획하고 가르치고 하나의 방침을 교육해서 그대로 따라오는 ‘새로운 사람’을 만들려고 해왔다. 나치 독일이 그랬고, 내가 열 살 때 전쟁에 질 때까지의 일본도 그랬단다. 그러나 이런 국가는 주변 국가들을 비참하게 만들고는 결국 망했어. 내가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이런 틀에 박힌 인간과는 다른, 홀로 설 줄 알지만 협력할 줄도 아는 진짜 ‘새로운’ 사람이 되어주었으면 한다는 거다. 어떤 ‘미래’에서나 말이다.”
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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