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빨강을 다시 본다… ‘천년의 색-레드’ 展

  • 입력 2004년 5월 30일 16시 57분


김환기 ‘무제’, 1972년
김환기 ‘무제’, 1972년
《태극기, 단청, 일편단심(一片丹心)…. 우리 문화사에서 붉은 색은 생활 색이었다. ‘레드 콤플렉스’라는 말이 상징하듯 한동안 ‘잃어버린 색’이기도 했다.

‘붉음의 미학’을 주제로 한 이색 전시가 열린다. 6월 20일까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전관에서 펼쳐지는 ‘천년의 색-레드(Forever Red)’ 전은 ‘빨강’을 코드로 12세기 고려청자부터 2004년 제작된 회화까지 천년에 걸친 회화와 오브제 작품 50여점을 한자리에 모은 전시다.

준비에만 2년이 걸렸다.》

○ 왜 레드인가

전시기획팀 김미라씨는 “미술의 기본인 ‘색’만 따로 떼어 낸 전시를 해 보자는 의도에서 ‘블루’ ‘옐로’ 전 등도 고민해 보았지만, ‘레드’가 역사상 가장 오래됐으며 예술가들이 내면을 상징하는 색으로도 즐겨 썼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우리의 경우 2002년 월드컵 때 붉은악마가 ‘붉은색 금기’를 무너뜨리는 과정에서 사회 문화적 담론을 치러낸 경험이 있어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라는 점도 고려됐다.

‘색(色)’은 사회문화적으로 만들어진다. ‘블루, 색의 역사’의 저자인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학교 미셸 파스투로 교수도 “사람들이 본래부터 좋아하는 색, 싫어하는 색은 없다. 색에 대한 우리의 느낌은 사회적 현상”이라고 말한다. 붉은 색만 예로 든다면 프랑스의 앙시앵레짐(구체제) 하에서 적색기가 질서의 상징이었다가 혁명이 터지면서 공화주의자들이 적색기 아래에서 총 맞아 사망한 뒤부터는 억압받는 민중을 상징하게 됐다. 이에 비해 동양에서는 붉은색이 권력의 상징이었다. 중국 역대 왕조는 물론이고 우리나라에서도 삼국시대 이후 최고 벼슬의 관복은 붉은 색이었다.

이중섭 ‘싸우는 소’, 1950년대

○ 어떤 작품이 나오나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은 이중섭의 ‘싸우는 소’(1950년대). 검붉은 배경에 푸른색 소와 누런 황소가 뿔을 맞대 겨루고 있는 작품이다. 개인 소장가가 이번 전시를 위해 내놓은 것으로 30년 만에 대중 앞에 선보인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두 마리 소의 단순한 힘겨루기가 아니다. 다리를 버티고 꿈쩍도 않을 듯한 힘을 발산하고 있는 황소에, 서 있을 힘조차 없어 다리가 땅에서 떠 있는 푸른색 소가 젖 먹던 기운까지 짜내듯 힘겹게 맞서고 있다. 작가의 내적 갈등의 극적인 표현일 수도 있고, 증오스러운 세상이나 삶을 버텨내려는 작가의 안간힘으로도 보인다.

김환기의 대작 ‘점 시리즈’(1972년)도 볼만하다. 화면 전체를 투명한 붉은 점으로 처리해 우주적 화음과 질서를 서정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강렬하면서도 공격적으로 느껴지기 쉬운 ‘빨강’이 따뜻함과 평안함을 줄 수도 있음을 체감하게 한다. 김흥수의 ‘파천’(1989년)과 유영국의 60년대 대표작 ‘Circle’ ‘Work’도 함께 나온다.

신학철은 ‘황혼’(1983년)을 통해 기왕의 민중적 작품 분위기와는 달리 초현실적인 붉은 화면을 선보이고, 홍성담(2004년)이 그린 ‘붉은 악마’는 온 국민이 환호하며 열광했던 2002년 월드컵 때의 사회 분위기를 그대로 다시 기억하게 해 주는 8m 가까운 대작이다. 붉은색과 흰색을 과감하게 사용해 긴장감을 주는 안창홍의 ‘불새’(1985년)는 그로테스크한 형태와 색채로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복숭아 연적, 조선시대

고미술품도 볼만하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한 점도 귀하다는 진사(辰砂)백자가 무려 20여점이나 나왔다. 진사란 백자 위에 구리 녹으로 그림을 그린 것으로 가마에서 구울 때 불 조절이 관건이다. 도자계에서는 ‘붉은 물이 백자에 한 방울 들어가면 10배로 귀해지고 청자에 들어가면 100배 비싸진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전시작들 중 복숭아 연적은 실제 복숭아처럼 탐스럽고 아름다워 찬탄이 절로 나온다. 이밖에 주칠(朱漆)의 장, 농, 병, 민화, 목가구 등도 나오는데 나무 색깔과 주칠의 만남이 고급스럽고 깊은 맛을 낸다. 02-720-1020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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