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재삼
저 푸르고 연한 미루나무의
눈부신 잎사귀에
바람은 어디서 알고
여기까지 찾아와서는
끊임없는 희롱을 하고 있는가.
이런 범용한 것을
사람들은 예사로 보고,
어떤 정치적 사건에는
그 한때에 머물건만
그것을 들고 큰 야단이네.
천년이고 만년이고
한결로 이 빛나는 경관이
한 옆에 있길래
죽고 나면 못 볼 이것을
넋을 잃고 보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일이 막상 어디 있는가.
- 시집 ‘꽃은 푸른 빛을 피하고'(민음사) 중에서
그 많던 미루나무들은 어디로 갔을까? 논두렁마다 빗자루처럼 길쯤한 키로 서서 구름을 쓸던, 참매미 말매미 쓰르라미들을 한 움큼씩 달고 여름내 편안한 잠 한 숨 못 자 야위던 미루나무들.
‘이런 범용한 것을 / 사람들은 예사로 보고’라는 대목에서 무릎을 친다. ‘범용(凡庸)’이나 ‘예사(例事)’나 ‘흔하고 보잘 것 없는 것’들을 일컬음이니 ‘보잘 것 없는 걸 보잘 것 없이’ 보는 게 무에 문제인가?
그러나 시인은 저 ‘보잘 것 없는 것’들을 ‘넋을 잃고’ 바라보라 한다.
새삼 시인을 알겠다. 보잘 것 없는 것들을 빛나는 경관으로 보는 눈이라면 세상만사 신비롭지 않은 게 어디 있겠는가? 아니 애초에 보잘 것 없는 것이란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저 빛나는 경관, 죽고 나면 못 본다 하셨나요? 시인 자신이 이제 바람이 되어 저 이파리들 희롱하고 있는 줄을 내가 아는데….
반칠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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