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만나는 시]박재삼,“빛나는 景觀”

  • 입력 2004년 5월 30일 17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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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景觀

- 박재삼

저 푸르고 연한 미루나무의

눈부신 잎사귀에

바람은 어디서 알고

여기까지 찾아와서는

끊임없는 희롱을 하고 있는가.

이런 범용한 것을

사람들은 예사로 보고,

어떤 정치적 사건에는

그 한때에 머물건만

그것을 들고 큰 야단이네.

천년이고 만년이고

한결로 이 빛나는 경관이

한 옆에 있길래

죽고 나면 못 볼 이것을

넋을 잃고 보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일이 막상 어디 있는가.

- 시집 ‘꽃은 푸른 빛을 피하고'(민음사) 중에서

그 많던 미루나무들은 어디로 갔을까? 논두렁마다 빗자루처럼 길쯤한 키로 서서 구름을 쓸던, 참매미 말매미 쓰르라미들을 한 움큼씩 달고 여름내 편안한 잠 한 숨 못 자 야위던 미루나무들.

‘이런 범용한 것을 / 사람들은 예사로 보고’라는 대목에서 무릎을 친다. ‘범용(凡庸)’이나 ‘예사(例事)’나 ‘흔하고 보잘 것 없는 것’들을 일컬음이니 ‘보잘 것 없는 걸 보잘 것 없이’ 보는 게 무에 문제인가?

그러나 시인은 저 ‘보잘 것 없는 것’들을 ‘넋을 잃고’ 바라보라 한다.

새삼 시인을 알겠다. 보잘 것 없는 것들을 빛나는 경관으로 보는 눈이라면 세상만사 신비롭지 않은 게 어디 있겠는가? 아니 애초에 보잘 것 없는 것이란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저 빛나는 경관, 죽고 나면 못 본다 하셨나요? 시인 자신이 이제 바람이 되어 저 이파리들 희롱하고 있는 줄을 내가 아는데….

반칠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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