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개봉되는 ‘투모로우(원제 The Day After Tomorrow)’에서는 감독의 이런 반성이 읽힌다. 환경오염과 지구온난화로 야기된 엄청나게 파괴적인 자연재앙이 지구를 위협하는 상황에서 이에 맞서는 인간 군상의 크고 작은 휴먼드라마가 촘촘히 배열돼 있기 때문이다. 감독은 가족과 친구, 애인, 이웃을 구하려는 개인적인 차원으로 카메라를 낮춰 지구 대재앙을 풀어낸다. 물론, 문제는 그 이야기의 설득력이지만 말이다.
기상학자 잭 홀 박사(데니스 퀘이드)는 빙하를 탐사하던 중 기상 이변을 예감한다. 그는 “지구 온난화로 빙하가 녹아 해류 흐름을 바꿀 것이며 결국 빙하기가 몰아닥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러나 미국 부통령은 “한참 뒤에 걱정해야 할 일”이라고 이를 일축한다. 한편 홀 박사의 아들 샘(제이크 길렌할)은 여자친구 로라(에미 로섬)와 함께 퀴즈대회에 참가하러 뉴욕으로 간다. 얼마 후 토네이도와 해일, 수박만한 우박과 폭설이 지구를 강타한다. 지구 북반구는 점차 빙하로 덮인이고 멕시코 국경을 넘어가는 미국인들의 엑소더스가 시작된다. 도서관에 고립된 샘과 로라는 혹한과 굶주림에 맞서 싸우고, 홀 박사는 아들을 구하기 위해 죽음의 땅인 뉴욕으로 향한다.
에머리히 감독은 벌려놓은 이야기들을 수습하려 하지만, 무지막지한 스펙터클에 눌려 에피소드들은 점차 파편화된다. 하지만 뭘 더 바라겠나. 스펙터클이라는 뜨거운 용광로 속에 자연재해든 괴물이든 외계인의 습격이든 온통 쏟아 붓고 휘휘 저어 통쾌한 엔터테인먼트를 생산하는 것이 이 감독의 전문인데. 사실 그는 자연재앙 영화에서조차 교훈성을 증발시키는 아주 특별한 장점이자 단점을 갖고 있다. 영화를 본 사람들이 ‘환경오염을 줄여야지’라며 조바심을 낼까. 천만에. ‘이런 일이 생기면 흥미진진할 것 같다’는 쪽일 듯하다.
지구 위험을 간파한 기상학자가 위기를 눈앞에 두고 아들을 찾아 사지(死地)로 떠나는 설정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러나 이 영화의 주인공은 어차피 혹한과 토네이도와 해일과 우박이 만들어내는 스펙터클 그 자체이다.
에머리히 영화에 사탕발림처럼 등장하던 미국우월주의와 영웅주의도 사라졌다. 강경하기로 소문난 딕 체니 미국 부통령을 빼닮은 영화 속 부통령은 자기아집만 부리다가 결국 멕시코 국민에게 “미국 난민을 받아줘 진심으로 감사한다”고 머리를 조아린다. 또 부통령에 휘둘리는 대통령(왠지 고어 전 부통령을 닮았다)은 가장 늦게 백악관을 나서다 얼어 죽는다.
오만한 미국 꼬집기라? 사실 웃기는 일이다. 1억2000만달러(약 1440억원)를 퍼부으며 “이래도 안 볼 테냐”는 식의 막무가내 물량공세를 펼치는 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로? 풍자도 때론 사치스러울 때가 있는 법이다. 12세 이상 관람 가.
▼빙하기는 올까, 영화처럼…▼
영화 ‘투모로우’의 내용은 지구 온난화로 녹아내린 빙하가 난류(暖流)의 온도를 떨어뜨리면서 기상이변을 가져와 북반구 대부분이 얼어붙는 것으로 설정돼 있다. 과연 지구의 빙하기는 다시 올 것인가. 이에 대해 학계의 평가는 엇갈리고 있다.
북극 인근 8개국 과학자들의 모임인 북극기후영향평가협회는 “북극 빙하가 무서운 속도로 녹고 있으며 빙하 지대의 기온 상승 폭이 지구 평균보다 2∼3배나 높아 대재앙이 우려된다”는 보고서를 최근 발표했다. 미국 국방부도 “북극의 빙하가 녹아 멕시코 만류의 흐름을 차단함으로써 영국과 북유럽은 시베리아성 기후로 변해 15년 안에 세계적인 기아가 발생할 것”이라는 시나리오를 내놨다.
하지만 이 같은 주장을 극단적 가설로 보는 학자들도 많다. 대서양 해류 변화가 지구 기후 체계의 아킬레스건임을 주장한 바 있는 미 컬럼비아대학 윌리스 브루커 교수는 “이 보고서가 밝힌 변화의 속도와 심각성은 과장됐다”고 지적했다.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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