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피플]영화 ‘인어공주’서 엄마와 딸 1인2역 전도연

  • 입력 2004년 6월 2일 16시 22분


영화 ‘인어공주’에서 1인2역 연기에 도전한 전도연. 그는 “배우가 팬들에게 줄 수 있는 최대의 선물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권주훈기자 kjh@donga.com
영화 ‘인어공주’에서 1인2역 연기에 도전한 전도연. 그는 “배우가 팬들에게 줄 수 있는 최대의 선물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권주훈기자 kjh@donga.com

웨이브 진 긴 머리에 배꼽이 드러나는 티, 몸에 꼭 붙는 청바지. 여기에 선글라스만 쓰면 영락없이 영화 ‘피도 눈물도 없이’ 중 수연의 모습이다. 얼마 전 TV에서 화장기 없는 맨얼굴로 입양아를 돌보던 모습이라곤 상상할 수도 없다.

배우는 팬들이 갖고 있는 이미지 또는 환상을 먹고 살아간다. 그것에 의지하거나 혹은 그걸 깨뜨리거나. 데뷔작 ‘접속’(1997년)에서 ‘약속’(1998년), ‘내 마음의 풍금’ ‘해피 엔드’(이상 1999년),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2001년), ‘피도 눈물도 없이’(2002년),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2003년)까지.

배우 전도연(32)은 그의 필모그래피가 증명하듯이 이전 작품의 이미지를 철저하게 ‘배반’하면서 성장한 배우다. 최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충무로에서 가장 연기 욕심이 많은 배우라는 그를 만났다.

●‘인어공주’는 전도연의 ‘종합선물세트’

25일 개봉 예정인 ‘인어공주’(감독 박흥식)는 지금은 나이가 든 엄마, 아빠의 젊은 시절을 찾아가는 판타지 드라마다. 우체국에서 근무하는 나영은 우연하게도 엄마 연순의 스무 살 시절로 돌아가 엄마의 꿈과 사랑을 엿본다.

전도연은 나영과 젊은 시절의 연순, 1인2역을 맡았다. ‘국화꽃 향기’ ‘살인의 추억’의 박해일이 엄마가 사랑하는 젊은 시절의 아빠 진국으로, 탤런트 고두심이 나이든 연순으로 등장한다.

“누군가 ‘인어공주’는 전도연이란 배우의 ‘종합선물세트’ 같은 작품이라고 하더군요. 사탕 초콜릿 과자 등 모든 게 들어 있는, 전도연 연기의 총정리편이에요.”

지나친 말이 아니다. 한두 컷 보여주는 1인2역이 아니라 한국 영화에서는 드물게 본격적으로 1인2역의 연기를 펼친다. 전도연은 전체 114신 가운데 110신에 등장한다. 한마디로 ‘전도연을 위한, 전도연의 영화’다.

그는 “전도연이란 배우가 한 작품에서 인기를 끌었다고 팬들이 그 이미지를 재생하는 걸 원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시나리오를 보는 순간 정말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거꾸로 그래서 안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전)도연씨가 딱 연순이예요”

박 감독은 지난해 시나리오를 건네주면서 “(전)도연씨가 딱 연순이예요”라고 말했다.

“감독님의 말도 있고 해서 정말 나 아니면 작품이 ‘뒤집어진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촬영 도중 감독님이 ‘무덤에 갈 때까지 말하지 않으려 했는데 사실은 젊은 여배우가 후보로 한 명 더 있었다’고 털어놓더군요. 그래서 감독들은 믿으면 안 된다니까요.”(웃음)

영화 얘기가 나오자 그는 갈증이 나는 듯 레드와인을 주문했다. 극중 진국과 연순이 등장하는 ‘인어공주’의 예고편 얘기가 나오자 즉석에서 손짓을 해 가면서 “오라이가 머 다요”라며 연기까지 펼쳤다.

여기서 나온 기자의 엉뚱한 질문.

“도연씨, 짱구 아닌데요.”

“그러게요.”

“아, 옆에서 보니 튀어나왔네요.”

“옆에서 보면 그렇죠.”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어 ‘인어공주’ 포스터를 사무실에 붙여놨다고 했다. 그러자 박수까지 쳐 가며 “정말요? 뭘 드시고 싶어요?”라며 좋아했다. ‘팔색조’ ‘변신의 귀재’라는 별명 이전에 ‘짱구’라는 별명 때문에 데뷔 초기 고민도 했다는 그는 감성적이고 매우 솔직한 배우였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올드 보이’의 칸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수상이 화제에 올랐다. 레드 카펫을 한번 밟아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박찬욱 감독의 차기작 ‘친절한 금자씨’의 주역으로 물망에 오르는 여배우가 있잖아요. 그럼 그 작품은 그 배우 몫이죠. 아마 제가 감독이라고 해도 전도연보다 그 배우와 작업하는 게 의미가 있을 겁니다. 전 욕심도 많고, 자존심도 세고, 레드 카펫을 위해 나를 포기할 생각은 없거든요. 또 복수극인데 ‘올드 보이’의 최민식 선배처럼 망가지면 시집을 어떻게 가겠어요.”(웃음)

그는 또 다양한 연기 변신에 대해 “가수 조성모의 노래 ‘가시나무’ 중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라는 가사가 맞는 것 같다”며 “지금까지 연기한 인물은 새롭다기보다는 내 속에 있는 누군가를 연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나이 서른둘. 20대 때 결혼 얘기를 꺼내면 집에서 “썩을 ×”이라고 했지만 이제는 식구들도 기다리는 눈치란다.

“결혼은 내가 꿈꾸는 삶의 일부예요. 아기도 좋아하고, 출근하는 남편 옷을 잘 챙겨줄 자신도 있고…. 결혼하려면 꿈을 꾸어야 하는 건지, 버려야 하는 건지.”(웃음)

김갑식기자 dunanworld@donga.com

▼한 장면 ‘두 전도연’의 비밀▼



‘인어공주’에서 볼거리 중 하나는 나영과 젊은 시절 연순이 만나는 장면. ‘킬리만자로’ ‘범죄의 재구성’ 등에서도 1인2역 동시 등장 화면이 짤막하게 나왔다. 하지만 ‘인어공주’에서는 두 사람이 동시에 나오는 화면 분량만 10분이 넘고, 롱테이크(길게 찍기)도 많아 공력이 더 들어갔다.

이 화면들은 △나영의 모습 촬영 △1시간여 동안 연순으로 재분장 △같은 장소에서 연순의 모습 촬영 △현장에서 예비 화면 합성 △실제 화면 합성의 순서로 제작됐다.

1인2역을 맡은 전도연의 ‘연기 파트너’는 테니스 공. 상대 배우가 없기 때문에 높이가 조절되는 받침대에 테니스공을 올려놓고 시선을 맞췄다. 대사는 전도연이 이어폰을 끼고 미리 녹음된 대사를 들으면서 나영과 연순의 대사를 잇달아 했다. 나중에 컴퓨터 그래픽(CG) 작업으로 이어폰을 제거했다.

두 사람이 접촉하는 장면의 촬영은 훨씬 까다로웠다. 나영이 연순에게 편지를 전달하는 장면에서는 재분장을 위한 1시간여의 시차 때문에 편지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는 것을 막기 위해 작은 ‘바람 벽’을 설치해 놓고 촬영했다.

이 같은 컴퓨터그래픽(CG) 작업에만 1억5000만원이 들어갔다. 이 영화의 CG 작업을 맡은 ‘씨너지’의 서상화 실장은 “TV 뉴스와 영화 등에서 활용하는 크로마키 기법은 미세하게 색이 번지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았다”며 “‘인어공주’의 1인2역 화면은 자연스러운 것이 특징”이라고 자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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