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꿈 같은 일이 이루어졌어요.”
“그래. 푹 자고 일어나도 사라지지 않을 멋진 꿈이지.”
두 사람은 피아니스트 한동일씨(62)와 아버지인 팀파니스트 한인환씨(91). 서울시 교향악단 팀파니스트를 지낸 아버지는 아들의 도미(渡美) 50주년을 기념하는 이날 콘서트를 맞아 팀파니 스틱(북채)을 다시 들었다.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5번 ‘황제’. 아들은 솔리스트로 피아노 앞에 앉았고, 아버지는 서울시향 후배 단원들 틈에 자리를 잡았다.
“일단 연습하시는 모습을 본 뒤 결정하기로 했죠. 웬걸요, 아흔이 넘은 연세에 안경도 안 쓰시고 악보를 읽으시더라구요.”
서울시 교향악단 관계자는 “적어도 백세까지는 이런 무대에 서실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부자(父子)가 땀을 식히고 있는 사이 낯익은 얼굴이 대기실로 들어왔다. 원로 피아니스트 정진우씨(서울대 명예교수)였다. 한인환씨와 정씨는 두 손을 마주잡았다. “한 선생님, 연주가 살아있어요. 귀를 믿지 못하겠네요.”
연주회장 로비에서 열린 리셉션에서 90대의 노 팀파니스트는 근황을 상세히 소개했다. “매일 두 시간씩 테니스를 칩니다. 아흔이 넘었다면 젊은이들이 상대 안할까봐 칠십 세라고 속이죠. 그리고 다 이겨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살고 있는 그는 “95세까지 쓸 수 있는 새 운전면허증을 최근 캘리포니아 경찰로부터 받았다”고 소개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아버지는 저의 영원한 버팀목이고 후원자입니다. 한 무대에 서니 더욱 든든하더군요.” 전후(戰後)의 피폐한 고국을 떠나 세계무대에서 활동한지 50년을 맞은 아들은 모든 영광을 아버지에게 돌렸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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