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역사 공부는 제2의 직업” 나홀로 뿌리찾는 사람들

  • 입력 2004년 6월 3일 17시 16분


고대사 공부는 민족의 정신적 고향을 찾는 작업이다. 절대 국수주의자가 아니라고 말하는 정신과 전문의 구자일씨는 ‘나홀로 역사를 찾는 사람’이다.이종승기자 urisesang@donga.com

고대사 공부는 민족의 정신적 고향을 찾는 작업이다. 절대 국수주의자가 아니라고 말하는 정신과 전문의 구자일씨는 ‘나홀로 역사를 찾는 사람’이다.이종승기자 urisesang@donga.com

《원광대 소진철 교수가 백제의 영향력이 중국 최남단까지 미쳤을 가능성이 높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백제 장군 흑치상지가 중국 최남단 광시(光西) 좡(壯)족 자치구의 바이지(百濟·백제)향 출신일 확률이 높다는 것. 그곳 사람들은 아직도 백제라는 지명을 쓰고 ‘대백제’라고 발음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위의 기사에서 백제향 부분은 2년 전 한 민간인 연구자의 책을 본 사람이라면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다. 한국방송(KBS) 송기윤 PD(45)가 2002년 낸 ‘중국에도 전주(全州)가 있다’라는 책이다. 이 책은 후백제의 도읍지였던 전북 전주와 중국 동남부 전주(全州)라는 곳의 연관성을 파헤쳐 백제의 중국 진출을 시사했다. 송 PD는 역사를 전공한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한국 고대사에 대한 애정은 역사전공자 못지않다고 자부한다. 역사 연구가 직업은 아니지만 일생의 ‘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나 홀로 역사를 찾는 사람들’이다. 》

○ ‘미스터리투성이’ 역사

송 PD는 전주 KBS에 있던 2002년 회사 앞의 ‘거북바위’에 관심이 끌렸다. 거북 모양으로 생겼다고 해서 거북바위로 불린, 길이 17m, 높이 5m의 거대한 바위였다. 그러나 송 PD는 이것이 바위와 흙으로 일부러 거북처럼 만든 것이라는 느낌을 받고 검증에 들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이 바위가 견훤이 후백제 도읍을 전주로 하면서 좌청룡, 우백호, 남주작, 북현무를 정할 때 북현무에 해당하는 거북(현무)을 인공적으로 만든 것임을 밝혀냈다.

백제와 비슷한 풍속을 가진 중국 전주의 요족 마을에서 2002년 취재를 하는 송기윤 PD.

“당시 거북바위를 자연석이라고 주장했던 학자들이 지금은 제 주장을 받아들인다고 들었습니다.”

송 PD가 고대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91년 ‘철의 왕국 가야’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다. 가야 철기의 흔적을 찾아 일본을 돌아다니다 백제의 영향이 엄청나다는 것을 발견한 뒤 취미 삼아 백제사를 공부한 것이 시작이었다.

‘삼국사기’, ‘삼국유사’부터 읽기 시작해 중국 정사와 ‘환단고기(桓檀古記)’, ‘규원사화’ 등 옛 역사책을 틈틈이 읽었다. 그리고 거북바위에 대한 취재를 할 무렵 인터넷에 ‘이십오사’, ‘자치통감’ 등 중국역사책을 모은 사이트(http://210.69.170.100/s25)를 알게 됐다.

“그 사이트에서 고구려 백제 신라 삼한 부여 등의 검색어를 치면 관련된 중국사서의 모든 내용이 나옵니다.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당시 전북대에 국문학 박사과정으로 온 중국인 교수에게 부탁해 번역을 했지요.” 송 PD가 연구를 할수록 한국 고대사는 ‘미스터리투성이’다. 국사학계에서 말하는 백제나 고구려의 강역과 그가 중국 사서에서 찾은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무척 많았다.

“김부식이 ‘삼국사기’에서 ‘고구려의 도읍은 평양’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평양이 지금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살고 있는 평양과 일치할까요? 우리는 어쩌면 ‘삼국사기’부터 다시 해석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 한민족 고대사 다시보기

정신과 전문의 구자일씨(43)는 서울대 의대에 다닐 때 동양의학을 공부하는 ‘동의학 연구회’라는 동아리 회원이었다. 침 마취법을 공부하기 위해 중국어 간체자를 익힌 것이 지금 중국책을 읽는 데 도움이 됐다.

당시 80년대에는 한민족의 고대사를 다시 보자는 움직임이 거셌다. 구씨의 동아리도 고대사 공부를 같이 했다. 그때 나온 책이 단군과 환웅을 신화가 아닌 역사로 본 ‘환단고기’였다. ‘위서(僞書)논란’이 지금까지도 계속되지만 고대사에 목마른 구씨에게는 다른 책이 없었다. 그러다 90년대 들어 중국에서 나온 역사책과 고고학책을 수입해 읽을 수 있었다.

구씨의 병원 서재에는 만주와 중국 동북지역의 고고학 자료를 모은 ‘중국고고집성(中國考古集成)’ 전집 등 중국에서 펴낸 각종 역사서적 200여권이 꽂혀 있다.

그는 이렇게 10여년간 연구한 내용을 97년 ‘한국 고대역사지리 연구’라는 책으로 펴냈다.

“저는 국수주의자가 아닙니다. 만주가 옛 우리 땅이니 내놔라 하는 건 말도 안 됩니다. 그러나 쿤타킨테가 ‘내 고향은 미국 미시시피’라고 한다면 웃기겠지요. 그의 고향은 아프리카 감비아이기 때문입니다.”

구씨의 연구에 따르면 국사학계에서 말하는 고구려, 백제의 강역은 너무 많이 한반도 안으로 축소됐다. 또 백제의 수도가 지금의 서울이었다는 것도 사실과 다르다.

“정신과 치료는 환자 개인의 역사를 캐내 문제의 근원을 파악하는 것입니다. 저의 고대사 연구는 민족의 역사를 캐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땅이 아니라 정신의 고향을 찾는 것입니다.”

○ 철저한 검증은 필수

한순근씨(59)는 대구지검 등에서 수사관으로 30여년간 일하다 2002년 대구에 법무사 사무소를 냈다. 그는 97년 ‘고기(古記)로 본 한국고대사’라는 책을 펴내고 지금까지 고대사 관련 논문도 10여 편 발표했다.

한씨는 대학 때 부전공으로 역사를 공부했다. 그러나 대학 3학년 때 집안 사정으로 중퇴하면서 역사에 대한 갈증이 남았다.

“우리 스스로를 ‘엽전’이라며 비하하는 일이 다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가득했지요.”

이후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틈틈이 고대사에 대한 공부를 했다. ‘환단고기’와 ‘규원사화’를 읽으면서 한민족의 고대사를 다시 생각했다. 대학도서관이나 시립도서관을 드나들면서 중국 사서를 찾아 읽었다.

그러나 그가 이른바 재야사학자들의 ‘고대사 다시 보기’에 무조건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97년 책을 낼 때 그들이 쓴 책을 참고하면서 검증을 소홀히 했다가 사실과 다른 것을 뒤늦게 발견한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어떤 책은 사서 원문 일부를 마음대로 누락시켜, 인용한 원문과 실제 원문의 의미가 전혀 달랐습니다. 또 어떤 책은 비문이나 사서 원본에 없는 내용을 있는 것처럼 적어놓았더군요. 저명한 재야사학자나 교수가 쓴 책이라도 그것이 근거로 제시한 사서 원문이나 고지도가 실제와 같은지 반드시 원전을 찾아 검증해야 합니다.”

사실 국사학계는 지금까지 이들의 주장에 대해 검토할 가치가 없다는 반응을 보여 왔다. 마찬가지로 이들도 학계가 관심을 보일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고 있다. 송 PD는 “나는 최대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실만 발표하려고 한다. 학계가 그 문제제기를 받아 나머지 연구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민동용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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